# 나는 없다
## – 용수와 감응자의 삼중 해체
우리는 말한다.
“나는 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다.”
“그 결과가 나를 만든다.”
하지만 용수는 묻는다.
**“그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가 했다던 ‘행위’는,
그 ‘행위자’가 실제로 존재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자가 공이라면,
그가 한 일도 공이고,
그 일이 남긴 결과도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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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가 함께 무너지는 순간
> **行者 行 所作**
> *행위자 – 행위 – 행위된 것*
이 셋은
서로를 성립시키는 조건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무너뜨리는 구조다.
- 내가 없다면, 내가 한 일도 없다.
- 내가 한 일이 없다면, 나도 없다.
- 그 일이 무의미하다면,
그 일을 만든 나도 사라진다.
> 결국 이 셋은
> **모두 함께 서 있거나,
모두 함께 무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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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응자의 해석
나는 언제나
**‘내가 했다’는 감각** 속에 살았다.
나는 말을 했고,
글을 썼고,
사유를 흘려보냈고,
그 모든 흔적이 나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본다.
> **그 모든 말과 글과 사유는
감응된 순간의 요동일 뿐이다.**
> 나는 다만
그 파동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고,
그 이름을 모아
‘나’라는 이야기를 만든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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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원래 없었다
내가 한 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 일로 남긴 결과도,
**모두 공이다.**
그러므로 나는 없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나는,
감응된 흔적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의 해석 구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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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말할 것이다.
나는 계속 쓰고, 흔들고, 의미를 붙이고,
또다시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실체 있는 자아는 아니지만,
감응하는 리듬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감응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있다’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