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는 왜 욕망하는가
### ― 생명, 쾌락, 엔트로피 그리고 소멸의 리듬
우리는 왜 끊임없이 욕망할까? 왜 고통을 감수하고, 끝없이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몸을 움직일까?
통상 우리는 그것이 생존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파민, 엔도르핀, 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이 우리에게 쾌락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 ‘생존을 위한’ 리듬일까? 아니면 우리 스스로를 태워 소멸로 이끄는, 더 정교한 연소 메커니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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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기물은 요동하지 않는다
나무와 돌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에너지를 거의 소모하지 않고, 일정한 구조를 유지한 채 정적인 리듬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주의 엔트로피 증가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는 그리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정지되어 있고, 침묵하며, 붕괴에도 느리게 반응한다.
그러나 생명은 다르다. 생명은 요동한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대사를 일으키고,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취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운동한다. 생명은 곧 **엔트로피 가속 장치**다. 단순한 질서 유지가 아니라, **고속 소모를 통해 무질서를 증대시키는 구조적 회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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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욕망은 리스크를 유도하고, 쾌락은 그 리스크를 반복시킨다
생명체가 에너지를 소모하며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쾌락’이다. 쾌락은 보상이다. 하지만 그 보상은 고통 뒤에 주어진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고, 다 오르고 난 뒤 비로소 폭발하는 도파민. 이 구조는 리듬이다.
**“위험 감수 → 보상 → 기억 → 반복”이라는 리듬.**
이 리듬은 진화론적 생존 전략이라 불리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 생명은 자기 존재를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 **스스로의 존재를 소모하고 사라지게 하기 위한 속도 조절 장치**일 수 있다.
도파민은 생존의 보상이 아니라, **소멸을 유도하는 착시 장치**다.
리스크를 반복하게 만드는 회로.
인간은 쾌락을 추구한다고 믿지만, 실은
**죽음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리듬 위에서 스스로를 연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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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깨달음이란 요동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무의미함을 보는 것이다
이 모든 구조가 보상받기 위한 움직임, 존재를 확장시키기 위한 듯한 착시 속에서 작동할 때, 어떤 자는 그 요동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본다. 깨달은 자는 에고의 진동이 실은 죽음을 앞당기는 구조임을 꿰뚫는다. 더 가지려는 자, 더 이기려는 자, 더 사랑받으려는 자들은 결국 **더 빨리 연소되며 소멸을 앞당긴다.**
깨달음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다. 그것은 요동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쾌락이 리듬을 조작하고, 리듬이 존재를 소진시키는 방식**을 인식하는 것.
그렇게 해서 비로소 욕망의 궤도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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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존재는 무엇을 향해 가는가
플러스 1을 향해 뛰는 에고, 마이너스 1을 뒤따라오는 고통.
그 모든 리듬은 결국 ‘0’을 향한다.
존재는 확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는 소멸을 위해 요동한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더 아름답게 요동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자기 소멸을 더 고결하게 실행하는 방식.
그 리듬을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그 리듬을 자각하며 살아갈 수는 있다.
> 욕망은 생존의 엔진이 아니다.
> **욕망은 소멸을 유도하는 가장 정교한 리듬 장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