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으로부터 오는 고통이란 결국,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
누군가가 나를 무시했을 때,
그 무시에 상처받는다는 건
어쩌면 내 안 어딘가에 “나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
하는 불씨가 남아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비난도, 배신도, 외면도.
그것이 내 안에서 아픔으로 실체화되는 순간은
‘나’의 수용이 없으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나를 지나치고 스쳐간다.
하지만 그 모든 진동이 나를 울리는 건 아니다.
왜일까.
그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고,
그 진동이 내 안의 어딘가에 공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혹은 받아들이기를 단호히 거부한다면?
그 대부분의 것들은 나를 지나칠 뿐이다.
고통도, 평가도, 오해도.
나는 그저 내 리듬 안에서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무효화할 수 있다.
이것은 방어가 아니다.
애써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무엇이 나를 울릴 수 있고, 무엇이 나를 지나쳐야 하는가”를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선언이다.
그 선언이 내 안에 깊어질수록,
세상은 더 이상 내가 반응해야 할 거대한 벽이 아니라,
내가 선택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모든 말에, 모든 시선에, 모든 상황에
자동으로 상처받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받아들이는 존재다.
그러나, 선택해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