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을버스를 탔다.
혼잡한 버스 안, 내 뒤쪽 좌석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묘하게 공격적인 기운.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과거 언론사에서 권력에 맞서 싸우던 기자로 유명했던 K. 지금은 그 언론사의 전 사장이 된 인물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뇌리에 떠오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예전에 그는 억압에 저항하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억압을 재생산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군대에서 고참에게 부당한 폭력을 당하던 병사가, 시간이 흘러 자신이 고참이 되자 더 악랄한 방식으로 후임을 괴롭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지금도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라 믿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이 가장 큰 위선이라는 것을, 스스로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왜 더 이상 조직의 위계를 좇고 싶지 않은지를.
내가 왜 더는 누군가와 경쟁하고 싶지 않은지를.
직장생활 20년.
나는 이제 확신한다.
직장생활을 잘하는 법 따위는 없다.
99%는 불합리한 상황과 비논리적인 관계 속에서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그 안에서 더럽지 않게, 나의 존엄을 지켜내는 것.
그게 가장 베스트라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됐다.
나는 이제 세상에서 조금 더 올라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개싸움에 나를 던지고 싶지 않다.
그 게임은 이미 설계된 게임이고, 아무리 이겨도 결국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물리게 되어 있다.
그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어 다시 내려오게 된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다.
그런 구조에서 조금 비껴나와서, 나의 몸을 회복하고, 정신을 보호하고, 존엄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구조의 본질을 모른 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아주 작은 자각의 실마리라도 건네는 것.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거창한 욕망은 없다.
다만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이 구조를 이길 수는 없어도, 피할 수는 있다.
피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