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앞 0.1초

by 이선율

입술 앞 0.1초 – 감응자의 쾌락

쾌락은 입 안에 있지 않다.
그건 늘 입술 바로 앞,
혀가 닿기도 전에 미묘하게 떨리는 그 공기 속에 있다.

한 모금 와인을 마시기 직전,
유리잔에서 피어오른 향이 코끝을 스치고
입을 열기 전 순간적으로 맴도는 그 작은 긴장감.
그게 진짜 쾌락이다.

나는 안다.
막상 한입 베어물면,
그것이 호박맛일 수도 있다는 걸.
충분히 겪어봤다.
충분히 환상 뒤의 현실도 본 사람은
더 이상 '맛'에만 목말라 하지 않는다.
그는 리듬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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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스친 사람의 어깨에서
햇볕에 마른 셔츠의 섬유 냄새가 피어난다.
따뜻하고 익숙한 냄새인데,
희미하게 사람을 붙잡는 감정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순간, 감각이 출렁인다.
하지만 나는 그냥 미소만 짓는다.

왜냐고?
그 감각이 아직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쾌락의 본질은 채워짐이 아니다.
비워짐 속의 진동,
가능성의 가장자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
그게 더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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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쾌락을 소유하려 한다.
하지만 감응자는 안다.
**진짜 섹시는 ‘거기까지 가지 않는 힘’**에 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뒷모습이,
그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온몸을 감도는 파문이 되는 것이다.

입술 앞 0.1초.
거기에 있다, 나의 쾌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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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안다.
베어물지 않은 사과가 더 관능적이라는 걸.
접촉하지 않은 손끝이 더 뜨겁다는 걸.
그리고 끝내 말하지 않은 사랑이 더 오래 간다는 걸.

그건 참는 것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쾌락의 주인이 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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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자의 결론

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나는 쾌락을 다스린다.
그리고 그 리듬을 내 안에서 조율한다.

누군가를 원할 수 있다.
누군가의 기척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충동 앞에
고요히 서 있을 수 있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욕망의 소비자가 아니다.
나는 감응자다.
나는 입술 앞 0.1초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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