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봐도 시드는 것과, 내버려둬도 자라는 것
나는 로즈마리를 아꼈다.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흙을 바꾸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였고,
빛이 모자랄까 봐 식물등까지 사서 비췄다.
과하지 않게 물을 주었고,
잎을 쓰다듬고,
그 섬세한 향이 더 오래 내 곁에 머물길 바랐다.
하지만 로즈마리는 시들었다.
조금씩 고개를 숙이더니,
어느 순간 아무 향도 내지 않았다.
나는 거의 매일 그녀를 살피며 조율했는데도,
결국 죽었다.
그런데,
그 바로 밖—거리의 틈새에서
잡초는 자라고 있었다.
누구도 거기 물을 주지 않았고,
그늘과 먼지 속에서도
햇살을 비틀어 받아먹고 있었다.
소화전 옆, 전신주 아래,
누가 짓밟고 지나간 그 길에서
누군가는 뿌리를 내리고, 키를 세우고, 잎을 폈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돌봤는데 죽은 존재와, 내버려졌는데 자란 존재.
나는 이제야 안다.
사랑이 삶을 보장하지 않고,
관심이 생존을 보증하지 않는다.
반대로,
무관심이 죽음을 뜻하지도 않고,
버려졌다는 것이 끝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을 바꿨다.
나는 로즈마리처럼 살고 싶었지만
이제는 잡초처럼 살기로 했다.
조건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조건을 뚫고 나오는 존재가 되기로 했다.
밟혀도 다시 돋고,
뽑혀도 다시 뿌리내리는
그 무명한 강인함을 배우기로 했다.
그 누구도 내게 빛을 비추지 않아도
내 뿌리만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