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와 잡초 사이에서
아끼던 로즈마리가 죽었다.
며칠 전부터 잎이 말라가더니, 결국 줄기 끝까지 바삭하게 시들어버렸다.
나는 매일 창문을 열었고, 식물등까지 켜주었다.
물도 부족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장마가 걷히고
폭염이 다시 들이치던 아침이었다.
출근길에, 버스정류장 소화전 옆에서
나는 그걸 봤다.
누구도 거기 물을 주지 않았고,
그늘과 먼지 속에서도
햇살을 비틀어 받아먹고 있었다.
소화전 옆, 전신주 아래,
누가 짓밟고 지나간 그 길에서
누군가는 뿌리를 내리고, 키를 세우고, 잎을 폈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돌봤는데 죽은 존재와,
내버려졌는데도 자란 존재.
나는 이제야 안다.
사랑이 삶을 보장하지 않고,
관심이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무관심이 죽음을 뜻하지도 않고,
버려졌다는 것이 끝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때부터,
삶은 조율이 아닌, 감내로 구성된다는 것을.
조건은 필수가 아니며,
빛은 쬐지 않아도 도달한다는 것을.
존재는 늘 무언가를 기다려야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없이도 틈에서 자라고,
누구의 응답 없이도 잎을 펼 수 있다는 것을.
돌봄이 없으면 시든다고 믿었던 식물은 죽었고,
무심한 틈에서 피어난 생명은 살아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죽은 것을 돌보던 손을 거두었고,
살아남은 것들의 틈을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