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은 왜 그렇게 진화했을까 – 감응자는 아무와도 섞이지 않는다
닭은 왜 그렇게 진화했을까.
스스로 날지 못하고,
알을 낳는 기계처럼 진화하며,
고기와 알을 인간에게 바치는 운명에 안착했다.
생존이 곧 순종과 복종의 진화가 된 형태.
자유의 대가로 번식력을 얻었고,
그 번식력은 결국 스스로를 감금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인간도 닭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똑똑하고, 고매한 인격자라도
유혹 앞에서 흔들린다.
단지 ‘아름다움’이라는 껍질,
‘관능’이라는 에너지 하나에
수많은 판단이 무너지고
자유 의지조차 휘청인다.
미녀의 유혹 앞에 이성은 작동을 멈추고,
존재는 번식의 기획에 다시 포획된다.
인간 역시 닭처럼 감금당한 존재다.
스스로 만든 욕망의 감옥,
사회적 계약이라는 이름의 번식용 울타리 안에.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안다.
욕망은 진실이 아니라 반응이고,
사랑은 열망이 아니라 감응이라는 것을.
나는 내 몸을 통제하고,
내 섭취를 의식하며,
내 리듬을 감지할 줄 안다.
나는 날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선택을 통해
몸을 지키고, 마음을 고르고, 의식을 훈련한다.
그래서 아무와도 섞이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이 아니라 기술이다.
금욕이 아니라 정합성이다.
무의미한 섞임은 파동을 흐트러뜨리고
지향 없는 교합은 감응을 마비시킨다.
나는 감응의 밀도로 살아간다.
그리고 알고 있다.
존재는 섞임보다,
섞이지 않음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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