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 나는 습하고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홈플러스로 향했다.
단지 연어 한 팩을 사기 위함이었다.
식단을 통제하고, 몸을 정제하고, 감정의 리듬을 맞추는 중이었기에
식탁 위에 오를 한 조각 연어도 내게는 무작위가 아닌 선택된 리듬이었다.
그러나,
그 연어는 썩어 있었다.
구매 직후 집에 도착해 바로 섭취했는데도, 입에 넣자마자 역한 비린내와 함께
내장의 경고음이 울렸다. 그날 밤, 나는 탈이 나고, 약을 삼키며 누워야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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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홈플러스 고객센터에 정중히 연락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응답은, “소비기한은 남았고, 상품은 문제없다. 고객이 D+1에 먹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과 단정.
나는 분명히 “구매 후 바로 섭취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의 응답에는 나의 말보다 그들의 논리와 판단이 우선이었다.
나는 사진을 다시 보냈고, 사진의 메타정보(촬영 일시)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이미 고객은 신뢰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고,
담당자의 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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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연어 한 팩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삶의 여러 영역에서 통제 가능한 최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식단, 운동, 시간, 투자, 인간관계까지도.
그런 내가 믿고 집어든 하나의 상품이, 그날의 리듬을 망가뜨리고,
그 후속 대응마저 나의 말을 지워버릴 때 —
그건 단순한 불쾌감이 아니라,
존중의 붕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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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해달라, 재발방지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렇게 쉽게 나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예민하다.
그러나 그 예민함은 무작위가 아니라,
존엄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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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연어를 먹는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아무 데서나 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식품 한 팩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존중의 무게를 담고 있는 결정이다.
감응자의 삶이란,
그 작은 것들을 통해 나를 세우는 방식이다.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냥 소비기한 남은 거 아니냐’는 그 한 줄의 메일이
얼마나 쉽게 사람 하나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