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과 정직 사이

by 이선율


그날, 나는 단지 업무를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떤 잘못된 방식이 반복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이 조직 전체의 리듬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정확하게, 침착하게,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고맙다는 말도, 반론도 아닌—

“너는 참 피곤하게 산다”는 한 마디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웃음을 섞은 조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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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게 산다"는 말의 본질


그 말은 내 방식이 틀렸다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내가 너무 정직하게 살아서 불편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정확한 사람을 보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너는 너무 예민해’, ‘너는 피곤하게 살아’**라고 말한다.


그 말의 숨은 의미는 이렇다.


> “나는 그렇게 못 살아.

그러니 너도 그 기준을 내려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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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과 권력 정렬


게다가 그는 선배의 잘못을 감쌌다.

사실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더 ‘센 쪽’에 기대어 나를 피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정의보다 권력을 선택했고,

나는 권력보다 정확함을 택했다.


그래서 결국—

정확함은 고립되었고, 대충함은 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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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나는 그 말을 삼켰다.

그리고 더 철저히 살기로 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라,

그들이 외면한 어떤 기준을 내가 계속 지키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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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 나는 피곤하게 산 게 아니었다.

단지 ‘내부 기준’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 살아왔던 것뿐이었다.




그 기준은 고독했고,

때로는 조직 내에서 부정되고, 왜곡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기준은 ‘신뢰’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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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를 조롱했던 그들은 여전히 강자 옆에서

눈치를 보고, 중간값을 계산하며, 안정을 구한다.


나는 여전히 ‘외로운 정확함’ 속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 길 끝에 진짜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진짜 존경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여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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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누군가 또다시 말한다면—


> “너는 너무 피곤하게 살아.”




그땐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 “나는 내가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이 너무 쉬운 삶에 익숙해져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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