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 곤충, 동물, 나무 같은 분류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이 구분은 오직 인간의 인식 시스템이 만든 범주일 뿐, 우주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실체도 갖지 않는다.
우주에는 단지 다양한 밀도와 주파수, 진폭의 파동들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분하고, 이름을 붙이고, 형상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파동이 특정 지점에서 잠시 응집해 있는 상태를 실체로 오해한 결과다.
형상은 없다.
존재는 없다.
다만, 다양한 속도와 주기로 요동치는 리듬의 응집만이 있다.
나무는 파동의 느린 진폭이다. 인간은 빠르게 요동치는 진동이다. 곤충은 짧고 격렬한 리듬의 순간이다. 각각은 플러스 원과 마이너스 원의 리듬적 위치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띠지만, 그 모든 것은 한 가지 공통된 구조를 따른다.
공이 요동한다. 그리고 그 요동은 형상이라는 착각을 만든다.
우리는 실재를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파동의 정류점에 만들어진 일시적 형상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우주는 리듬을 지속하고자 하며, 그 리듬의 응집이 인간이고 곤충이며 나무이고 돌이다.
결국 인간이 보는 것은 우주의 실체가 아니라, 우주 리듬의 한 장면일 뿐이다.
형상은 없다.
존재는 없다.
공의 리듬만이 있다.
그리고 인간은, 그저 하나의 리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우주 바깥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자인 줄 착각한다.
자신이 곧 우주 그 자체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우주를 외부의 대상처럼 분석하려 드는 이 이중 착각 속에서
양자역학도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성이론도 끝내 오해한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파동이며, 공이며, 리듬이지만
그 사실을 잊었기에 우주의 말을 들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