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공 — 잉여를 소각하는 리듬
우주는 목적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우주는 그 자체로 공이며, 공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하나의 구조일 뿐이다.
병에 물을 담는다고 생각해보자.
병의 용량이 100이라면, 물은 100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120이 들어온다면, 남는 20은 반드시 어디론가 배출되어야 한다.
흘러넘치거나, 뚜껑이 터지거나, 병이 깨지든지.
그 어떤 방식으로든, 병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잉여를 제거한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고, 의미도 아니며, 구조적인 반응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용량은 공이다.
그 공은 리듬을 통해 유지된다.
하지만 이 리듬은 언제나 요동친다.
에너지와 사건이 쏟아지고, 감정과 정보가 넘쳐흐른다.
그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상세를 통해 정리된다.
플러스는 생겨나는 것이고, 마이너스는 사라지는 것이다.
우주의 대부분은 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서로를 상세하며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어떤 사건은 너무 크다.
너무 격렬하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빠르게 생겨나
마이너스로 상세되지 못한 채 우주에 남는다.
그 남은 잉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우주는 그 잉여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우주는 ‘소각장’을 만든다.
그게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존재가 감당하지 못한 잉여를 공의 구조로 다시 환원하기 위한
임시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소각 장치다.
리듬이 수용하지 못한 파동, 의미로 포착되지 않은 에너지,
상세되지 못한 사건들,
그 모든 것을 우주는 하나의 점으로 응축시켜 처리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 어디에도 의미가 개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건은 단지 에너지가 넘친 결과일 뿐이다.
생명도, 감정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공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우주가 만든 수많은 배출 경로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과정을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리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우주는 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서 ‘사건’이란,
의미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리듬의 과잉’이 불가피하게 만들어낸
구조적 배출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철학이란
그 배출된 사건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 이면의 리듬을 감지하고
그 리듬이 다시 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묵묵히 기록하는 일이다.
《움직이는 공》은
잉여를 소각하며
다시 공으로 돌아가는
리듬 그 자체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