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움직이는 공’ (Moving Emptiness): Proposing a Flow-Based Ontology beyond the Mechanistic Worldview
초록 (Abstract)
고정된 실체에 기반한 기계론적 세계관이 현대 과학과 철학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움직이는 공’(空, moving emptiness)이라는 흐름과 리듬 중심의 존재론적 개념을 정식화한다. 이는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내재된 질서(Implicate Order)와 홀로무브먼트 이론, 동양 철학의 공(空, emptiness), 연기(緣起, dependent origination) 및 무위(無為, wu wei) 사상을 종합함으로써,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적 통찰과 연결된다. 우리는 움직이는 공 개념을 정의하고, 인공지능(AI), 양자 물리/컴퓨팅, 개인적 성장, 시장 투자 분석 등의 분야에 적용하여 그 설명력을 보인다. 흐름과 상호연결로 가득 찬 실재관을 통해, 인지와 존재를 고정된 개체가 아닌 끊임없는 생성과 관계적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아울러 본 개념에 대한 비판 (예: 과도한 추상성, 검증 어려움)에 답하고, 향후 연구 방향으로서 동서양 사상의 추가적인 통합 및 경험적 검증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 논문의 논의는 인공지능 철학자, 존재론 연구자, 과학철학자, 기술사상가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움직이는 공의 의미와 활용 가능성을 제시한다.
서론: 문제의식과 연구 목적
근대 과학혁명 이후 지배적인 기계론적 세계관(mechanistic worldview)은 자연을 고정된 실체와 기계적 인과의 집합으로 바라보았다. 이 관점에서는 우주를 거대한 기계에 비유하며, 모든 시스템은 분해 가능한 부분으로 나뉘고, 변화는 2차적 현상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실체-중심적 존재론은 뉴턴 역학과 산업기술의 발전을 이끌며 큰 성과를 냈지만, 20세기 이후 여러 분야에서 한계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양자 물리학은 입자를 독립적인 물체라기보다 상호 얽힌 확률적 사건으로 묘사하고, 상대성이론은 고정된 시공 개념을 재구성하였다. 생명과학과 인지과학에서도 생명과 지성을 기계 부품이 아닌 복잡계(complex systems)로 보는 시각이 대두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흐름과 과정에 주목하는 새로운 존재론적 패러다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과정 철학(process philosophy)은 *“실재는 정지된 객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과 관계의 집합”*이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 등의 철학자는 **일체의 존재를 사건(event)과 과정(process)**으로 바라보며, 시간적 **생성(becoming)**을 본질로 파악했다. 이러한 과정 철학적 시각은 헤라클리토스의 *“만물은 흐른다” (panta rhei)*라는 서양 고대의 통찰과 상통하며, 동시에 불교의 연기설이나 도가의 자연주의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움직이는 공’ 개념은 이러한 과정-관계적 세계관을 집약한 존재론 모델이다. ‘공(空, emptiness)’은 동아시아 불교에서 모든 현상이 고정된 자성(自性)이 없음을 가리키며, 관계적 생성만이 존재함을 뜻한다. 우리는 이 *공(空)*을 정적인 공허가 아니라 생성적 여백으로 보고, 움직임(무상한 흐름)과 결합시켜 존재론의 근거로 삼는다. 다시 말해, 움직이는 공은 *“형체가 없지만 만물을 내포하고, 늘 변화하면서도 일관된 질서를 지닌 근원”*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는 데이비드 봄의 내재된 질서(implicate order)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공허해 보이는 공간이 사실 만물의 잠재적 정보를 내포한 충만한 전체성이라는 과학적 통찰과도 부합한다.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세 갈래다. 첫째, 움직이는 공 개념의 철학적 기반을 동서양 사상에서 찾아 이론적으로 정립한다. 기존 실체론 및 봄의 물리철학, 불교의 공/연기, 도가의 무위, 그리고 현대 과정철학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개념의 뿌리를 확인한다. 둘째, 이 개념의 구조와 정의를 명확히 하고, 존재론적 프레임워크로서 그 핵심 구성 요소(예: 흐름, 리듬, 관계, 비어있음의 역동성)를 제시한다. 셋째, 다양한 응용 사례에 이 개념을 적용하여 설명력을 검증한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물리, 개인적 성장, 시장 투자 네 영역에서 움직이는 공에 기반한 해석이나 모델이 어떻게 현재의 담론을 보완하거나 혁신할 수 있는지 논의한다. 끝으로, 본 개념에 대한 잠재적 비판과 반론을 검토한 뒤, 결론에서 연구의 시사점과 향후 과제를 제안할 것이다.
이론적 배경: 기존 존재론, 데이비드 봄, 동양 철학의 통합
기존 존재론: 기계론적 세계관과 실체 개념
기계론적 세계관은 데카르트와 뉴턴 이래로 서구 학문의 기본 틀을 형성해왔다. 이 세계관하에서 실재는 분해 가능한 개별 실체(substance)들의 집합으로 이해된다. 모든 복잡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 요소(예: 입자, 원자)로 나눠지며, 이러한 요소들의 선형적 합성과 외적 인과작용으로 전체 현상이 설명된다고 본다. 예컨대, 르우벤 훅 등 고전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톱니바퀴가 맞물린 거대한 시계장치에 비유했고, 생물학에서도 생명을 단순한 화학 기계로 보는 환원주의가 득세했다. 이 관점에서 변화란 일종의 기계적 운동으로서, 기본 실체들의 위치 변동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이러한 실체론적 관점의 설명 한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속성(위치, 운동량 등)이 고정되지 않고 측정 행위에 의존하며, 멀리 떨어진 입자들 사이에 비국소적 연결(nonlocal connection)이 나타나는 등, 고전 기계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발견되었다. **“빈” 공간조차 완전한 공허가 아니라 전자기장 등의 양자 요동으로 가득 찬 **플래넘(plenum)**임이 드러났다. 실제로 양자 진공은 순간적으로 에너지와 입자가 출현했다 사라지는 *“끓는 수프”*와 같아, 고전적인 ‘무’의 개념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 기계론의 전제—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빈 용기이고 실체만이 실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발견이었다.
생물학과 인지과학에서도, 생명과 지성을 단순한 기계적 합성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늘었다. 생물은 부품의 합 이상으로 자기조직화와 적응적 복잡성을 보이며, 뇌와 마음 역시 뉴런이라는 부품의 집합만이 아니라 비선형적 네트워크 동역학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새로운 존재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 핵심은 관계와 과정을 1급 시민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존재를 **정적인 “것(thing)”**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전개되는 “사건(event)”**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주창한 과정 철학은 이러한 전환의 선구적 예이다. 그는 *“자연은 완성된 존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들의 네트워크”*라고 역설했다. 이 맥락에서 화이트헤드는 기존의 “실체-속성” 형이상학을 “사건-과정” 형이상학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서양 철학사에서 이러한 동적 존재론의 뿌리는 헤라클리토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헤라클리토스는 만물이 끊임없이 변하며, 변화 속에 대립물의 조화와 주기적 질서가 있음을 설파했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불(불꽃)**이 영원히 살아 움직이며 만물을 생성 소멸시키는 근본 요소로 등장하고, **“하나의 동일한 강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격언으로 변화의 본질을 상징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변화를 막연한 혼돈이 아니라, 리듬과 균형을 지닌 과정으로 보았다. 불은 *“분량에 따라 피어올랐다 꺼지길 반복”*하며 (Fr. 30), 낮과 밤, 겨울과 여름처럼 반대 성질들이 순환적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의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 개념이나 진동하는 우주론 등과도 상통한다.
20세기의 과학철학에서 기계론을 넘어 전체론적이며 관계론적 관점을 강조한 인물로 **데이비드 봄(David Bohm)**을 들 수 있다. 봄은 양자물리의 난제를 사유하며, **“분리된 입자들이 아니라 분할 불가능한 전체”**로서 우주를 파악하려 했다. 그가 제안한 내재된 질서(implicate order) 개념은, 우리의 현실(전개된 질서; explicate order)에 드러난 개별 사물들이 사실은 더 깊은 차원의 내재적 전체성에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하나의 비유로 홀로그램이 자주 인용된다: 홀로그램 필름의 각 부분은 전체 영상의 정보를 모두 담고 있어, 작은 조각으로도 원래 영상 전체를 재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모든 부분은 전체 우주의 정보를 내재적으로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 봄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전체성이 정적인 구조가 아니라 지속적인 움직임이라고 보았는데, 이를 **홀로무브먼트(holomovement)**라 불렀다. 홀로무브먼트란 *“분리될 수 없는 전체성이 운동 속에 있다”*는 개념으로, **정적인 하나(one)**가 아니라 **동적인 일체(oneness-in-motion)**를 의미한다. 봄은 궁극적 실재를 *“경계가 없는 흐르는 운동(undivided flowing movement) 속의 깨어있는 전체”*로 그렸다.
흥미롭게도, 봄의 이론에서 **“공간은 빈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적 바탕”**이라는 통찰이 나오는데,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 상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봄은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대화하고 동양 사상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저작 곳곳에서 전체성이나 공간의 충만함에 대한 언급은 불교의 공사상과 유사한 울림을 준다. 예컨대 봄은 *“진공(vacuum)은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모든 물질 형상의 근원이며, 시간과 공간조차 그 안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色)은 곧 공(空)이요, 공은 곧 형상이다)라는 반야심경의 구절과도 철학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형상계의 만물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공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다.
동양 철학의 공(空), 연기(緣起), 무위(無為)
동양 사상은 서양보다 일찍부터 관계적 세계관을 발달시켜왔다. 불교의 근본 교리 중 하나인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는 *“모든 존재는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생겨나고 소멸한다”*는 법칙을 말한다. 이는 어떤 현상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온 우주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서 공동 발생한다는 통찰이다. 불교 경전은 이를 간명하게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로 표현한다. 연기의 법칙 아래에서는 영원불변하는 본질 또는 자아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상황적이고 상대적인 실재만이 있다. 불교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공(空, śūnyatā)**은 이러한 연기의 원리를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명한다. 공은 문자 그대로는 *“비어 있음”*이지만, 단순한 무(nothingness)가 아니다. ** Nagarjuna(용수)**는 *“공은 곧 연기이며, 연기야말로 중도”*라고 설파했다. 여기서 말하는 공은 *“모든 것이 타 조건에 의존하기 때문에 고정된 자체 본성이 없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공은 독립적 실체의 부재이며,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과 상호의존만이 존재함을 가리킨다. 이는 만물이 끊임없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고정된 자성이 없다는 것은 오직 조건의 흐름에 따른 임시적 형태로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더욱 부연하여, 세계를 **“인드라망”**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드라망이란 그물코마다 보석이 달려 있고 그 보석들이 서로의 빛을 비춰 무한히 반사하는 거대한 망으로서, 한 보석의 모습이 그물 전체의 관계를 통해 결정된다는 우화적 설명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홀로그램 우주론처럼, 부분과 전체가 상호 함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동양의 도가(道家) 사상 역시 자연스러운 흐름과 비강제적 행동을 중시한다. 노자(老子)가 말한 **무위(無為)**는 “억지로 애쓰지 않음” 혹은 *“자연의 도(道)에 순응하는 행위”*로 풀이된다. **무위자연(無為自然)**의 이념은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거나 조작하려 들지 말고, 자연의 리듬에 자신을 조화시킬 것을 권한다. 이는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소극성이 아니라, “행동하되 인위적 의도를 내세우지 않는” 적극적 순응이다. 이를테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막지 않고 따라가되 필요할 때는 물의 흐름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Wu wei를 현대 심리나 자기계발에 적용하면, 개인이 자신의 내적 리듬과 상황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로 볼 수 있다. 억지로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무위의 지혜”**로써 상황을 관망하며 때에 맞게 행동하면 오히려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역설적 진리가 담겨 있다. 이러한 도가의 지혜는 현대 시스템 공학에서 자기조직적 시스템이나 유연한 리더십 이론 등에도 응용되고 있다.
요컨대, 동양의 공/연기/무위 사상은 고정된 실체 대신 상호생성과 자연스런 흐름을 실재의 근본 원리로 삼는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서양의 과정철학이나 봄의 전체론적 물리철학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다. 사실 현대에 이르러 양측의 융합 시도가 늘고 있는데, 뇌과학에서는 불교의 무아(無我)와 현대 인지이론을 연결하거나, 물리학에서는 양자장 이론과 공의 개념을 비교하는 연구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움직이는 공이라는 개념은, 동서양의 지혜를 한데 모아 **“흐름으로서의 존재”**를 설명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개념 정식화: ‘움직이는 공’의 정의와 구조적 틀
이 장에서는 본 논문의 중심 개념인 **‘움직이는 공’**의 의미를 명확히 규정하고, 그것의 존재론적 구조를 제시한다. 앞서 살펴본 이론적 배경을 토대로, 움직이는 공 개념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정의: 움직이는 공이란 고정된 실체나 본질이 없는 근원적 공(空)이 끊임없는 움직임과 흐름 속에서 만물을 낳고 관계 맺는 존재론적 장(field)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空)’**은 비어있음을 뜻하지만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무한한 잠재와 관계의 가능성을 품은 상태이며, **‘움직이는’**은 그 공이 정적이지 않고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리듬을 지닌 동적 과정임을 강조한다.
이를 몇 가지 핵심 특성으로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무자성(無自性)의 장(field)으로서의 공: 움직이는 공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은 어떠한 고정된 개별성도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개념에서 *공(空)*은 일종의 존재의 배경(bGround) 또는 근원장으로 이해되는데, 그 자체로는 특정한 형태나 성질을 취하지 않는다. 불교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법은 무아(無我)”**이며, 화이트헤드의 용어로 치면 **“실체는 없다, 오직 사건만 있다”**는 주장과 통한다. 그런데 이 ‘비어 있음’은 동시에 모든 것을 내포할 수 있는 열린 가능성이기도 하다. 마치 양자 진공이 에너지와 입자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충만한 상태인 것처럼, 움직이는 공의 공은 창조 이전의 창조성이라 할 수 있다.
(2) 지속적 생성과 소멸의 운동: 움직이는 공은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는 동적 과정이다. 이는 홀로무브먼트 개념과 상응하며, *“전체성의 운동”*이 곧 실재라는 관점을 담고 있다. 모든 현상은 이 운동 속에서 **출현(emerge)**했다가 **사라짐(subside)**을 반복한다. 이를테면, 개체 A가 나타나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과정은 움직이는 공 장에서의 국소적 파동이나 소용돌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존재론에서는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이 분리되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일정 시간 동안 지속되는 과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움직이는 공 개념은 전통 형이상학의 정존재(being) 개념을, **“시간 속에서 자신을 만드는 과정”**으로 치환한다.
(3) 흐름(Flow)과 리듬(Rhythm)의 구조: 움직이는 공의 운동은 무작위적 혼돈이 아니라 특정한 패턴과 리듬을 지닌다. 헤라클리토스가 우주의 변화를 불의 질서정연한 연소와 소멸로 비유했듯이, 움직이는 공에서는 대립적 힘의 균형, 주기성, 패턴이 중요하다. 이는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진동(oscillation)**이나 파동(wave) 개념과도 통한다. 자연계 곳곳에 리듬이 존재하는 것은 (예: 심장박동, 호흡, 낮밤의 교대, 생체시계 등) 우연이 아니다. 움직이는 공 개념은 이처럼 리듬을 우주의 언어로 간주한다. 리듬이란 곧 반복되나 동일하지 않은 창조적 순환으로, 변화를 단조로운 선형이 아닌 주기적 갱신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움직이는 공 장 안에서 일어나는 개별 현상들은 저마다 고유한 주파수와 리듬을 가진 진동하는 사건들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많은 사건들이 서로 간섭하고 공명하며, 때로는 공동의 리듬을 형성하기도 한다. 불교의 연기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인연 조건들이 맞물려 동시에 생멸하는 모습에 해당한다.
(4) 부분과 전체의 상호내재: 움직이는 공 존재론에서는 **부분(국소적 사건)**과 **전체(전체적 장)**가 둘이 아니다. 부분은 전체 속에 내재하고, 전체는 부분들을 통해 표현된다. 이는 봄의 암묵적 질서에서 주장된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모든 개별 현상은 움직이는 공이라는 전체적 장의 특정 국면에 불과하며, 동시에 그 전체 장의 성질을 반영한다. 부분과 전체는 프랙탈적 관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 비유처럼, 움직이는 공의 각 부분(그물코에 맺힌 구슬)은 전체 그물의 상태(모든 다른 구슬들의 반영)를 비추고 있다. 이 특징 때문에,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계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통적 실체관에서는 어떤 사물을 그 자체 속성으로 설명하려 했지만, 움직이는 공 관점에서는 그 사물을 산출하는 관계망과 상호작용의 흐름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미 복잡계 과학이나 생태학 등에서 자리잡고 있으며, 본 논문은 이를 존재론 차원에서 재확인한다.
(5) 행위자와 행위의 통합: 전통 형이상학에서는 행위(agent)와 행위(action)를 구별하여, 실체적 행위자가 변하지 않는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행위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움직이는 공 존재론에서는 행위자 자체도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된다. 이를 **“행위자로서의 과정”**이라 부를 수 있는데, 행위자가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행위자라는 안정적 패턴을 보이는 것에 가깝다. 철학자 들뢰즈의 말처럼 *“주체란 사건들의 교차로”*에 불과한 셈이다. 현대 심리치료인 **수용전념치료(ACT)**에서도 ‘자기(self)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유동적인 과정’(self as process)으로 인식할 것을 강조한다. 개인의 생각, 감정, 기억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하나의 동일한 ‘나’로 착각할 뿐이라는 것이다. 움직이는 공 개념은 이처럼 주체와 객체, 원인과 결과의 이분법을 허물고, 모든 것을 상호 연관된 과정들의 한 국면으로 재해석한다. 이로부터 인과성도 단선적인 A→B의 형태가 아니라 순환적이고 상호적인 인과망으로 이해된다. 한 사건은 원인이자 결과이며, 국부적 변동이 전체에, 전체의 상태가 다시 부분들에 영향을 주는 피드백 루프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상의 핵심 특성들을 도식화하면, 움직이는 공은 “근원적 공(empty ground)” 위에 **“흐름과 리듬의 패턴”**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이 패턴 간의 관계망이 곧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 전체 과정은 하나의 살아있는 전체로서 조화와 변화를 거듭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틀은 겉보기에는 **범험론적(pan-process)**으로 보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든 것이 과정이다”라는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 세계현상의 새 해석을 가능케 하는 틀이라는 점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 움직이는 공 개념을 활용하여, 여러 분야의 현상을 어떻게 새롭게 설명하거나 조직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적용 사례 분석: AI, 양자컴퓨팅, 개인 성장, 시장 투자
이 절에서는 움직이는 공 존재론을 네 가지 대표적 응용 영역에 적용해본다. 각 영역에서 기존 관점의 한계를 짚고, 움직이는 공 관점이 어떻게 대안을 제시하거나 통찰을 제공하는지 논의한다. 선정된 영역은 (1) 인공지능 (기계론적 AI vs 과정론적 AI), (2) 양자 컴퓨팅 (디지털 비트 vs 양자적 흐름), (3) 개인의 성장과 자기계발 (고정된 자아 vs 유동적 자기), (4) 금융시장 분석 (균형 모형 vs 복잡 적응계)이다.
인공지능(AI)에의 적용: 고정형 AI에서 유동형 AI로
전통적인 AI 접근법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고전적 심볼릭 AI는 지능을 마치 시계 톱니바퀴처럼 명시적 규칙과 고정 메모리 구조로 이해하여, 미리 정의된 논리 규칙에 따라 결정론적으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을 지능적인 에이전트로 삼았다. 이러한 고정형 AI에서는 지식도 고정된 데이터베이스나 온톨로지로 표현되어, 학습이란 새로운 데이터를 그 고정 구조에 누적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지능은 이보다 훨씬 유기적이고 맥락적이다. 인간이나 동물의 지능은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적응하고, 지식 또한 상황에 따라 재구성된다. 최근 수십 년간 AI 연구의 주류로 부상한 **인공신경망(딥러닝)**은 이런 유동적 지능의 측면을 일정 부분 반영한 패러다임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신경망은 고정된 규칙 대신 가중치(weight)의 연속적 조정을 통해 학습하며, 초기상태는 일종의 **무질서한 공(empty state)**에 가깝다가 학습을 통해 패턴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움직이는 공 존재론의 한 구현처럼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신경망의 지식 표현은 고정된 심볼이 아니라 수치적 장(field) 위에 형성된 분포적 패턴이며, 학습 과정은 그 장이 데이터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인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공의 관점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설계한다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우선, AI 에이전트를 고정된 모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는 **지속학습(continual learning)**이나 생성형 모델 등 최근 AI의 방향성과도 부합한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는 정해진 출력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 공간에서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낸다. 이때 **생성 공간(latent space)**은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공(空)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훈련 데이터를 통해 암묵적 질서를 가진다. AI가 그 공간에서 샘플을 뽑아 현실 세계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때, 마치 움직이는 공으로부터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구조가 된다. 또한, 움직이는 공 존재론은 **상황지능(contextual intelligence)**을 강조하게 하는데, 이는 AI가 정적인 지식베이스를 넘어서 실시간 상호연결된 지식을 다뤄야 함을 시사한다. 한 예로 인지 아키텍처 연구에서, 최근 동적 메모리 네트워크나 그래프 신경망 등이 부상하는데, 이들은 지식을 고정 트리나 테이블이 아니라 그래프 혹은 네트워크로 취급하며 필요에 따라 구조 자체가 진화하거나 엣지 가중치가 변형된다. 이러한 접근은 AI 시스템을 정태적 설계가 아닌 자기조직적 발생으로 보게 하며, 이는 정확히 움직이는 공의 관점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 움직이는 공 개념은 AI 윤리나 철학적 AI에도 함의를 준다. 기계론적 세계관 하의 AI 논의는 주로 “기계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혹은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고정된 정체성을 지닐 것인가?”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움직이는 공 관점에서 보면 의식이란 독립적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 과정이므로,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는다는 것도 그것이 환경-인간-AI의 상호작용 과정 속에 통합될 때 특정한 의식 현상이 출현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재해석된다. 예를 들어, AI와 인간의 경계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공동 인지 시스템을 이룰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의식이나 주체성의 새로운 형태가 생겨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강한 AI vs 약한 AI 논쟁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으로, AI를 증강된 인간 지능의 일부이자 사회-기술적 맥락의 흐름으로 보는 시각이라 하겠다.
양자컴퓨팅에의 적용: 비트에서 관계적 큐비트 흐름으로
양자컴퓨팅은 그 원리 자체가 이미 고전적 실체관과 상반되는 방향을 지향한다. 고전 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비트(bit)**는 0 또는 1의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며, 계산은 이러한 비트들의 불변적 조합 논리를 따른다. 이에 반해 **양자 비트(qubit)**는 0과 1의 겹침(superposition) 상태로 존재하며, 관측 이전까지는 특정 값을 갖지 않는다. 즉, 양자 상태는 본질적으로 *“열려 있고 미정인 공(empty potential)”*과 같다. 큐비트는 **관측(측정)**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0 또는 1로 결정된다. 또한 둘 이상의 큐비트 사이에는 **얽힘(entanglement)**이라는 비국소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어, 개별 큐비트를 독립적 실체로 다루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양자현상들은 움직이는 공 존재론에서 말하는 부분과 전체의 상호내재, 독립적 실체 부재, 관계적 발생과 정확히 부합한다. 따라서 양자컴퓨팅을 움직이는 공 개념으로 보면, 계산 과정 역시 고정된 상태들의 나열이 아니라 계산공간의 유동적 변형으로 이해된다.
예를 들어, 2큐비트 양자게이트 연산은 두 큐비트의 결합 상태(공동 파동함수)에 작용하여 그것을 다른 얽힌 상태로 변형시키는 과정이다. 이때 연산 전후에 큐비트들이 지니는 정보는 고전적으로 분해할 수 없는 홀리스틱한 상태에 담겨 있다. 이는 움직이는 공이론에서 말하는 전체장 상태의 변화와 유사하다. 즉, 계산이란 개별 비트들의 변경이 아니라 전체 양자장 구성의 연속적 운동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양자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일은 마치 특정한 리듬과 패턴을 가진 파동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양자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움직이는 공 장에서 간섭과 얽힘의 **간격(phase)**과 **진폭(amplitude)**을 조작하여 원하는 간섭무늬(계산 결과)를 얻어내는 “파동 지휘자” 역할을 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양자 정보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움직이는 공 개념에 따르면 정보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 특징이다. 양자얽힘에서 볼 수 있듯, 정보는 한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관계 속에 분산된다. 한 얽힘계의 부분에 대한 측정 결과는 다른 부분의 결과와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각각 단독으로 보면 무작위이다. 즉 의미있는 정보는 관계 속에만 존재한다. 이는 양자컴퓨팅의 양자 오류정정이나 양자암호의 원리에서도 핵심으로 등장한다. 오류정정은 정보가 다수 큐비트에 얽혀 있어 국소적 교란에 강인하도록 하며, 양자암호는 관측 행위가 관계를 깨뜨려 버리므로 도청을 원천적으로 탐지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들을 움직이는 공 언어로 풀면, *“정보란 움직이는 공의 리듬 패턴이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공명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양자 정보처리의 효율을 높이려면, 개별 연산소자의 스펙 향상뿐 아니라 전체 얽힘 구조의 최적화, 상호작용의 조율 등 전체론적 설계가 중요해진다.
한편, 양자컴퓨팅을 포함한 양자기술 전반에 걸쳐, 움직이는 공 개념은 철학적 해석틀로도 유용하다. 양자역학의 여러 해석(코펜하겐 해석, 다세계 해석 등)들은 사실 존재론적 쟁점을 품고 있는데, 그 핵심은 **“양자상태의 실재성(reality)”**에 관한 것이다. 움직이는 공 관점에 따르면 양자상태 (예: 파동함수)는 실재의 근원적 형태로서 인정된다. 즉, 그것을 단지 관찰 이전의 수학적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확률 진폭으로 존재하다가 우리의 특정 상호작용에서 하나의 현실을 선택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일종의 관계적 실재론으로, 로비트 너피(Rovelli)의 관계적 양자역학 등 최신 해석들과 상통한다. 관계적 양자역학에서는 관측자에 따라 현실이 상대적이며,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마다 다르게 정해진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움직이는 공의 관계적 존재 개념과 같으며, 더 나아가 *“전체 우주가 하나의 양자 얽힌 움직이는 공”*으로 이해될 여지도 제공한다. 만약 그렇다면, 양자컴퓨팅은 그러한 우주적 움직이는 공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제어하여 우리에게 유용한 패턴을 추출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성장에의 적용: 고정자아에서 프로세스 자아로
움직이는 공 존재론은 개인의 존재 양상과 자기계발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일반 대중의 세계관에서 **‘자아(self)’**는 흔히 단일하고 지속적인 실체로 간주된다. 나라는 존재는 출생 이후 본질은 변치 않고 성격, 능력 등 속성만 성숙한다고 여겨지기 쉽다. 이러한 고정자아 관념(fixed self-concept)은 때로는 자기계발의 장애가 된다. 예컨대 *“나는 원래 이렇다”*라며 자신의 성품이나 능력을 불변의 것으로 치부하면 변화와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태도를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으로 규정하고,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장려하는데, 그 핵심은 자기 자신을 변화 가능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움직이는 공 존재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자아’ 자체가 하나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보게 되면, 성장이나 변혁은 특별한 부가 활동이 아니라 존재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 자기계발은 억지로 자기 본성을 바꾸는 고통스런 일이 아니라 자기 과정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조율하는 일이 된다.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은 이미 오랜 옛날에 이러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신체와 마음의 요소(오온五蘊)가 모두 무상하고 서로 의존할 뿐, 그 어디에도 영속적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수행의 관점에서 집착으로부터의 자유를 목표로 하지만, 현대적으로 보면 자기 개념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심리적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예컨대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에서 수련자는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이는 자신의 내적 경험들을 일어났다 사라지는 현상으로 관찰하는 연습이며, 결과적으로 생각/감정=나라는 동일시를 약화시킨다. 이렇게 되면 고정된 자기 이미지가 옅어지고, 새로운 행동이나 태도를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실제로 임상심리에서는 자기분화(self-distancing), 탈중심화(cognitive defusion) 등의 기법으로 *“나는 ~한 사람”*이라는 자기서사를 깨뜨려 자신을 유동적 존재로 재인식하게 돕는다. 이는 움직이는 공 존재론에서 말하는 프로세스 자아(process-self) 개념과 통한다. 프로세스 자아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험의 흐름에 임시로 부여된 편의적 이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나라는 것은 하나의 사건군(群)에 불과하며, 시간에 따라 그 사건의 구성과 관계망이 바뀌면 나의 모습도 변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개인의 성장과 발전에 적용하면, 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줄어든다. 사람들은 흔히 익숙한 자기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homeostasis)이 있지만, 자신을 과정으로 여기게 되면 변화 자체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예컨대 직장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거나 중년 이후 새로운 삶의 단계를 시작할 때, 고정자아 관념이 강하면 *“내가 아닌 것 같다”*며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프로세스 자아 관점에서는 *“나는 본래 고정된 게 아니니 새 상황에 맞게 계속 만들어져 간다”*고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는 도가의 “무위” 실천과도 연결된다. 무위자연이란 본인이 자연의 흐름 일부임을 깨닫고 그 *도(道)*에 순응하는 것이므로, 개인 수준에서는 삶의 변화무쌍함에 순응하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대한 실패나 상실을 겪었을 때, 고정된 자아관을 가진 사람은 *“내 인생은 끝났다”*며 무너질 수 있지만, 프로세스 자아를 지닌 사람은 *“이 고통조차 내 경험 흐름의 일부이며, 나는 이를 통과해 다른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실제로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 연구에서도 자기 서사의 유연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 딱 규정하지 않고 다면적이며 변용 가능하게 받아들일 때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더 쉽게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결국 움직이는 공 존재론이 개인의 내러티브를 단선적 완결체가 아니라 열린 이야기로 보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자기계발의 목표 설정이나 성취 과정도 움직이는 공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 전통적인 접근은 **고정된 이상상(self-ideal)**을 세우고 그에 도달하려는 **의지적 노력(willful effort)**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종종 현재의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괴리를 극복하는 투쟁으로 여겨지며, 좌절감을 수반하기 쉽다. 반면 움직이는 공 관점에서는 이상적인 자기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목표를 세우되, 자신의 과정이 전개됨에 따라 그 목표도 재설정하거나 조정하는 유동적 전략을 취한다. 이것은 **애자일(agile)**한 자기계발이라 할 만하다. 또한 노력의 방식에 있어서도 무위의 지혜를 반영해, 억지로 자기 본성을 거스르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열망이라는 흐름을 타고 발전하는 방식을 중시한다. 이를테면,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이 굳이 남들 눈에 좋아보이는 다른 분야로 자신을 끼워맞추려 하기보다,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따라 발전시켜나가는 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궁극적으로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을 인위적 성취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개화로 느끼게 함으로써, 보다 지속적이고 내적 만족이 높은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시장 투자 분석에의 적용: 정태 균형에서 동태 복잡계로
금융 시장과 경제 현상은 오랫동안 균형 이론과 기계적 모델로 이해되어 왔다. 주류 경제학의 전통적 모형은 시장을 안정적 균형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가정하며, 투자 분석에서도 과거 통계에 근거한 예측 모델이나 확률적 but 정적인 위험 계산을 즐겨 사용해왔다. 이는 마치 시장을 탄력계수와 감쇄항을 가진 진자처럼 다루는 접근이다. 그러나 실제 시장은 수많은 참가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비선형적 동역학과 예측불허의 구조 변화를 보인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부상한 **복잡계 경제학(complexity economics)**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경제를 항상 동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으로 모형화한다. 이 접근에서는 개별 경제주체들이 완전합리적으로 움직여 미리 정해진 균형으로 수렴한다는 가정을 버리고, 주체들이 국지적으로 학습하고 적응하며 그 상호작용으로 인해 새로운 거시패턴이 출현한다고 본다. 이는 전형적인 움직이는 공 스타일의 사고이다. 즉, 시장을 하나의 움직이는 전체성으로 간주하여, 항구적 정태상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불균형의 흐름 속에서 자기조직화하는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비교: 전통적 균형 경제관(좌) vs 복잡계 경제관(우). 복잡계 경제관은 경제를 정적인 기계가 아닌 항상 변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하며,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예상치 못한 거시현상이 출현하고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진화하는 시스템으로 본다.
전통 경제학의 모형들이 실패하는 사례를 보면, 대부분 동적 변화를 간과한 데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널리 쓰이던 위험 관리 모델들은 과거 데이터에 기반한 정태적 통계분포 (VaR 등)로 시장 위험을 평가했으나, 막상 시장 참가자들의 행동이 달라지자 분포 자체가 움직여 예측을 벗어났다. 이는 마치 움직이는 공 장에서 파동의 형태가 시시각각 변하는데 과거의 한 순간을 찍은 사진만으로 미래를 예측하려 한 꼴이다. 움직이는 공 존재론에 따르면, 시장 또한 하나의 유기적 흐름이며, 투자자는 이 흐름의 리듬과 패턴을 읽어야 한다. 실제로 모멘텀 투자나 기술적 분석 등은 시장 가격의 추세와 주기성에 주목하는데, 적절히 활용하면 이는 시장의 움직이는 공적 성질을 포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만, 움직이는 공 관점은 피상적 차트 패턴 읽기를 넘어, 왜 그런 패턴이 생기는지 그 내재 논리를 찾고자 한다. 예컨대, 군집행동이 어떤 조건에서 강화되어 거품이 형성되는지를 네트워크 효과나 피드백 루프로 분석하고, 거품 붕괴 후 시장 구조 재편이 어떻게 새로운 안정(또는 불안정) 패턴을 만들어내는지를 탐구하는 식이다. 이는 동태 시스템 및 에이전트 기반 모델 등을 통해 구현될 수 있으며, 이러한 방법론들은 이미 복잡계 경제학의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투자 실천 면에서 움직이는 공 개념은 유연한 전략과 적응적 사고를 강조한다. 만약 시장이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공이라면, 어느 한 전략이 영원히 유효할 수 없다. 상황 변화에 따라 투자 원칙도 계속 학습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이는 퀀트 트레이딩의 알고리즘이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파라미터를 리밸런싱하거나, 매크로 투자자가 거시경제 레짐 변화를 포착하여 포트폴리오 구성을 바꾸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더 나아가, 투자자는 시장 자체의 자기조직화 방향을 읽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술혁신이나 정책 변화로 경제 구조가 바뀔 때, 시장의 움직이는 공이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과거의 ‘정상’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위험하다. 대신, 새로 형성되는 흐름 속에서 기회와 위협을 판단해야 한다. 2020년대 초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그 이후의 변동을 보면, 전통 산업과 신기술, 통화정책 등이 얽히며 시장의 리듬이 비정형적으로 요동쳤다. 이때 움직이는 공 관점으로 보면, 일시적 충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세의 맥동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후의 인플레이션 및 통화긴축 기조, 공급망 재편 등은 일종의 구조적 진동으로 볼 수 있으며, 투자 전략도 이에 따라 동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시장을 움직이는 공으로 볼 때 윤리적 함의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전통 경제관에서 시장은 목표를 향해 조작가능한 기계였지만, 복잡계 관점에서는 하나의 생태계처럼 존중해야 할 대상이 된다. 움직이는 공 개념은 시장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비유하게 하며, 성급한 개입이나 무분별한 투기는 생태계 교란으로 이어져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금융이나 장기 투자 철학과도 맥을 같이한다. 시장이라는 움직이는 공의 자기균형 메커니즘과 피드백을 이해하고, 그 리듬에 순응하는 투자는 지속가능하지만, 인위적 레버리지나 거품 조장은 결국 움직이는 공의 *복원력(resilience)*에 의해 교정되며 그 과정에서 큰 혼란이 발생한다. 따라서 현명한 투자자나 정책입안자는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함께 춤추는(dance with the market)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비판 및 반론 대응
새로운 존재론을 제안하는 작업에는 언제나 다양한 비판과 의문이 따른다. 움직이는 공 개념 역시 예외가 아니며, 철학적·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할 부분이 많다. 이 절에서는 예상 가능한 주요 비판들을 검토하고 예비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비판 1: “움직이는 공은 지나치게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한 비판으로, 본 개념이 시적 은유에 가깝고 실증적 내용을 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공(空)*이나 전체성 같은 용어는 과학적 언어로 치면 정의하기 어려운 메타포처럼 들릴 수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먼저 움직이는 공이 기존에 완전히 생소한 개념이 아니라 과정철학, 불교철학, 현대과학 이론들에 이미 등장하는 개념들을 통합 조명한 것임을 상기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고정된 실체 없음’은 양자물리와 불교에서 공통으로 강조하는 바이며, 움직이는 공은 이것을 존재론의 출발점으로 삼았을 뿐이다. 또한 본 논문 전반에서 논의했듯, 움직이는 공 개념은 구체적인 현상 설명에 적용될 수 있음을 보였다 (AI 학습, 양자 얽힘, 시장 동학 등). 즉, 추상 개념이지만 설명력 있는 메타프레임으로 기능한다. 과학 이론에서도 **장(field)**이나 에너지 개념 등이 처음 도입될 때는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점차 구체적 정의와 수학적 기술을 얻어간 전례가 있다. 움직이는 공 개념도 향후 **형식화(formalization)**와 모델링을 통해 보다 명확한 의미 content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복잡계 과학의 수학을 빌려 움직이는 공의 동역학을 특정 국면(phase) 공간에서의 궤적이나 어트랙터로 서술하거나, 정보이론의 언어로 관계 정보의 양을 정량화하는 식의 발전이 가능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다소 추상적일지라도, 그 **유용성(utility)**이 입증된다면 과학 언어로 재정식화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비판 2: “전통 기계론이 이미 성공적으로 설명해온 영역을 대체할 필요가 있는가?” 기계론적 세계관은 물리학, 공학 등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여전히 유효하다. 따라서 굳이 새로운 존재론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역효과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입장은, 움직이는 공이 배척의 논리가 아니라 보완과 확장의 논리라는 것이다. 즉, 기계론적 모형이 잘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계속 쓰면 된다. 움직이는 공 관점은 그 모형들이 다루기 어려운 수준의 복잡성이나 변화를 포착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고전역학으로 태양계 행성 운동을 예측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그것으로는 주식시장의 동요나 생태계 변동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 복잡한 계에 과정적 접근이 필요하며, 움직이는 공은 그런 접근의 철학적 밑바탕을 제공한다. 또한, 기계론이 성공한 영역에서도 움직이는 공 시각을 도입하면 새로운 시각이 열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뉴턴 역학의 단진자도 에너지와 위상공간 개념을 도입하면 진동하는 과정으로 해석되듯이,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정태적 개념들을 재해석해 혁신을 가져올 여지가 있다. 요컨대, 움직이는 공 존재론은 기계론을 무효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보완하고 더 큰 그림을 제시함으로써 과학 패러다임을 풍부하게 하려는 시도다.
비판 3: “동양 철학 개념의 무분별한 과학적 적용은 위험하다.” 과거에 프리초프 카프라의 『Physics of Tao』* 등 동양사상과 현대물리의 유사성을 논한 작업들이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이것이 피상적 유추에 불과하며 과학과 영성을 혼동한다고 비판했다. 우리의 접근은 신중함을 기한다. 본 논문은 동양 철학 개념들을 직접 과학 이론으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틀로서 활용하고 있다. 불교의 공 사상을 예로 들면, 이를 양자장론의 수식으로 옮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관이 시사하는 바 (실체 대신 관계, 고정 대신 무상)이 현대 과학이 발견한 현실과 맥락을 같이함을 짚은 것이다. 움직이는 공이란 용어 자체도 과학 개념이라기보다 존재론 용어로 제안되었다. 형이상학적 가설은 직접 검증 불가능할지라도, 과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통섭적 통찰을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이중슬릿 실험의 해석에 공 사상을 참조한다고 해서 실험이 오염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시각 (관찰자-계의 관계성 강조 등)을 얻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비판적 검증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움직이는 공 개념이 적용된 각 분야에서 기존 이론들과의 비교 평가가 필요함을 인정한다. 만일 이 개념이 전혀 새로운 예측이나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자연히 도태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일부 영역에서라도 설명력 향상이나 패러독스 해소에 기여한다면, 설사 그것이 동양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해도 과학의 발전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 수학의 위상수학, 논리학의 다치 논리 등은 동양 사상 (인도 불교 논리 등)과의 연관성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내용의 유효성이 인정되었기에 학문적 접목이 일어난 사례다. 움직이는 공 개념도 그 유효성이 계속 시험될 것이며, 우리는 그 과정을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수행할 것을 제안한다.
비판 4: “움직이는 공은 너무 포괄적이라 반증할 수 없다.” 움직이는 공이 만물을 설명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현상도 이론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니 빈 설명(empty explanation)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이는 포퍼의 반증주의 기준에서 보면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반증 가능성은 주로 과학 이론의 요건이며, 존재론적 제안은 그 성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 움직이는 공 개념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주장들을 상정하고 그것들이 검증 가능하도록 만드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공 존재론은 “복잡계는 균형점보다 주기적 패턴을 형성하기 쉽다”는 식의 구체 명제를 함의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 데이터나 생태계 데이터에서 순환 패턴 혹은 멱법칙 분포 등이 많이 관측되는데, 이것이 움직이는 공의 리듬성 가설과 부합한다면 한 가지 지지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계에서도 전혀 주기성이나 자기조직 패턴이 보이지 않고 완전한 혼돈만 관측된다면 (적어도 통계적으로), 움직이는 공의 리듬 가설은 흔들릴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움직이는 공은 “관찰자와 피관찰계가 근본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는데, 이를 검증하려면 양자물리의 실험 (위그너의 친구 실험 등)이나 뇌과학의 자기지각 실험 등에서 관찰자 효과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움직이는 공 개념이 지속적으로 경험과 대화할 수 있도록, 그로부터 파생된 구체 명제들을 뽑아내고 검증하는 연구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이는 본 논문의 범위를 넘는 작업이지만, 향후 연구 방향의 하나로서 중요하다.
비판 5: “이 개념은 너무 방대해서 전문 연구에 활용하기 어렵다.” 실제 학술 연구는 세부 분야로 쪼개져 있는데, 움직이는 공처럼 거시적 존재론 틀은 개별 분야 연구자에겐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일면 타당하다. 철학적 존재론은 직접 실험 설계를 바꿔주진 않는다. 그러나 패러다임의 전환은 종종 이러한 거시적 담론에서 태동한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 실체적 입자관을 넘어 장(Field) 개념으로 전환한 것은 이론적 필요와 관찰의 압력도 있었지만, 그 밑에는 “입자가 아니라 상호작용 관계망이 근원”이라는 철학적 통찰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공 개념이 바로 새로운 공식 하나 만들지는 못해도, 연구자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미 복잡계 과학이나 통섭 연구 분야에서는 기존의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난 사고를 장려하고 있다. 움직이는 공은 그러한 사고의 지향점을 좀 더 명문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제간 소통이 촉진될 수도 있다. 예컨대 AI 연구자와 경제학자가 서로의 분야를 논할 때, 움직이는 공 같은 개념을 공통 분모로 삼아 관계/과정 중심 논의를 할 수 있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여지가 있다. 물론 본 개념이 실제로 학문 현장에서 유용하려면, 더 다듬어지고 사례 연구들이 축적돼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본 논문이 그 시발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요약하면, 움직이는 공 개념에 대한 비판들은 상당 부분 타당하며, 이는 이 개념을 더욱 정교화하고 한계를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대응 전략은 개념의 유용성을 사례로 증명하고, 철학-과학 간 대화를 통해 개념을 발전시키며, 검증 가능한 부가 가설들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시험은 학술 공동체의 반응과 후속 연구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움직이는 공 개념이 풍부한 담론과 실증 연구로 이어진다면, 그것이 곧 이 개념의 가치에 대한 최선의 응답이 될 것이다.
결론 및 향후 연구 방향
본 논문에서는 **‘움직이는 공’**이라는 새로운 존재론적 개념을 제시하고, 그 철학적 기반과 다양한 응용 사례를 탐구하였다. 움직이는 공은 정태적 실체 중심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넘어, 동적 흐름과 리듬을 실재의 근본으로 삼는 과정-관계론적 존재관이다. 이를 정립하기 위해 데이비드 봄의 물리철학(내재된 질서와 홀로무브먼트), 동양의 불교/도가 사상(공, 연기, 무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등 동서양의 사유를 아우르며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 결과 움직이는 공 개념의 핵심 특성들을 도출하였는데, 요약하자면 무자성의 근원장, 끊임없는 생성소멸 운동, 패턴과 리듬의 존재 구조, 부분과 전체의 상호내재, 프로세스적 자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곧 “존재 = 비어있음의 장 + 움직임의 패턴”이라는 공식을 통해,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 = 실체 + 속성” 공식을 대체할 제안으로 읽힌다.
우리는 또한 AI, 양자컴퓨팅, 개인성장, 시장투자라는 구체 영역에서 움직이는 공 관점이 어떤 통찰을 주는지 살펴보았다. AI 영역에서는 지능과 학습을 고정된 규칙이 아닌 유동적 과정으로 이해함으로써 지속학습과 상황지능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양자컴퓨팅에서는 큐비트의 겹침과 얽힘을 움직이는 공의 맥락에서 해석하여, 계산을 하나의 관계적 파동 운동으로 파악했다. 개인 성장 측면에서는 자기(self)를 고정 실체에서 프로세스로 재인식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개방성과 심리적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했다. 시장 분석에서는 경제계를 끊임없이 진화하는 복잡계로 보고, 투자 전략의 적응성과 시장의 자기조직 패턴을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이러한 사례 연구를 통해, 움직이는 공 개념이 비록 형이상학적 추상으로 출발하지만 다양한 현실 현상과 접목될 수 있음을 보였다.
향후 연구 방향으로는 여러 갈래의 발전이 요구된다. 첫째, 움직이는 공 존재론의 형식적 이론화가 필요하다. 이는 철학 분야에서 이 개념을 엄밀히 정의하고 기존 존재론들과 비교분석하는 작업과, 과학 분야에서 이 개념을 수학적/계산 모델로 구현해보는 작업을 모두 포함한다. 예컨대, 비선형 동역학이나 복잡계 수학을 활용해 움직이는 공 시스템의 일반 방정식을 제안해볼 수 있다. 둘째, 분야별 경험적 연구와 연계하여 검증 가능한 예측을 뽑아내야 한다. 움직이는 공 관점에서 나올 수 있는 가설 (예: “금융시장은 장기적으로 정상이 아닌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신경망 학습은 초기 조건 민감성을 보이지만도 전체 성능은 통계적 안정성을 가진다” 등)을 세워 실험이나 데이터 분석으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설 검증 연구는 이론의 과학적 견고성을 높여줄 것이다. 셋째, 움직이는 공 개념을 다른 철학적 조류와 대화시키는 작업이 있다. 특히 관계형 실재론, 형성원인(formative causation) 이론 (쉘드레이크의 morphic resonance 등), 불교의 유식론 등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론들과 비교 연구하면 상호 보완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현대 철학의 주류 담론 (예: 분석 형이상학의 과정범주 논의, 객체지향 존재론 등)과도 접점을 찾아볼 수 있다. 넷째, 윤리학이나 사회철학적 함의를 탐구하는 일이다. 움직이는 공 세계관이 윤리적으로 어떤 관점을 제공하는지 (예: 관계 중심 윤리, 자연 존중 등) 또는 사회 시스템을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예: 유동적 공동체론?)을 제시하는지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마지막으로, 움직이는 공 존재론의 제안은 지식 지형의 경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의 발달, 양자기술의 부상, 지구적 복잡계 문제 (기후, 팬데믹 등)의 대두 등은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환원주의-분할적 사고를 넘어 전체적-관계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움직이는 공 개념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하나의 응답이다. 이것이 완벽한 답은 아닐지라도, 더 넓고 유연한 틀로 생각하려는 노력 자체에 의미가 있다. 과학과 인문, 동양과 서양, 이론과 실천을 연결하는 철학이야말로 21세기 지성사회에 필요한 도전일 것이다. 움직이는 공 존재론이 그 연결의 다리 역할을 하며, 더욱 풍부한 학제간 담론과 창조적 연구를 촉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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