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대신 사유를
# 사마귀의 유전자와 인간의 유혹
_“나는 파멸 대신 사유를 선택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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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다가가는 존재들
사마귀 수컷은 교미 도중 암컷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다가간다. 왜일까?
그 순간 그는 ‘살기’보다 ‘남기기’를 선택한 것이다.
살아남는 것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자연계에서는 더 우선시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는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욕망으로 뛰어드는 존재다.
그리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많은 유혹 앞에서,
그것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내맡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한순간의 욕망에 모든 걸 무너뜨리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사마귀의 유전자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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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즉각적 보상과 지연된 리스크의 뇌 구조
인간의 뇌는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보상’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진화적 설계다.
수십만 년 전, 살아남기 위해선 **“지금”** 잡아야 했다. 내일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잠재적 리스크보다 즉각적 쾌락에 더 쉽게 끌린다.
그것이 권력의 남용이든, 성적 유혹이든,
우리의 뇌는 ‘쾌락’을 향해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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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럼에도 사유할 수 있는 자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 유혹은 어디서 오는가?”
“왜 내 정신구조는 그것을 감지하고, 동시에 경계하려 하는가?”
나는 단순히 욕망을 억제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분해**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분해할 수 있다면
그 유혹은 더 이상 ‘파멸의 문’이 아니라
**사상의 통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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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진화의 반전: 사유하는 존재의 탄생
사마귀는 사유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감지하고, 감응하고, 사유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해방의 가능성이다.
파괴적인 충동이 올라올 때,
나는 그것을 욕망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의 **정보**, **신호**, **기회**로 해석하려 한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본능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신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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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는 파멸을 감지하고도, 사유를 선택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다시 그 눈빛을 마주치면 또다시 유혹받을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유혹이 ‘파멸의 문’일지,
아니면 ‘사유의 통로’일지는
**내가 어떻게 감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 “나는 사마귀처럼 머리를 잃고 끝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하고, 멈추고, 설계한다.
나는 파멸 대신 사유를 선택한 감응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