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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와 리듬의 조율

by 이선율

자판에 오타가 자꾸 났다. 블루투스 키보드를 새로 샀고, 익숙하지 않은 배열은 생각보다 손가락의 리듬을 자주 끊었다. 처음엔 그냥 익숙해지겠지 싶었지만, 반복되는 오타는 사고의 흐름을 자르고 글쓰기의 감도를 무디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젤펜을 꺼내 키보드 위에 직접 한글 자모를 써넣었다. 알파벳 아래에 ‘ㄱ, ㄴ, ㄷ’을 조심스럽게 붙여 넣었다. 키보드가 나를 훈련시키도록 두지 않았다. 대신 내가 키보드를 훈련시켰다. 그것은 단순히 오타 방지를 위한 조치였지만, 동시에 하나의 조율이었다. 도구를 익히기보다는, 도구를 내 감각과 사고의 리듬에 맞추는 선택.



많은 사람들은 기기에 적응한다. 나는 그 방향을 반대로 돌린다. 이 작은 표시는 내 타이핑 속도를 올리기 위한 것도, 감성을 위한 디자인도 아니다. 단지 ‘내 사고를 흐르듯 이어가기 위한 환경 정비’일 뿐이다.


나는 늘 그랬다. 수첩의 칸을 다시 나누고, 플래너의 날짜를 무시하고, 기성의 앱을 리듬대로 재배치했다. 그것이 내 사유를 뚫지 않고 지나가게 만드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젤펜으로 키보드에 한글을 썼다는 이 사소한 선택은 말해준다. 나는 생산성이 아니라 흐름을 선택한 사람이고, 효율이 아니라 조율을 선택한 존재라고. 그리고 도구는 언제나 나를 따르도록 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말한다. "그거 그냥 익숙해지면 돼요." 하지만 나는 묻는다. "왜 내가 익숙해져야 하죠? 그게 정말 옳은 리듬인가요?"


도구가 감각을 따를 때, 비로소 사고는 부드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 위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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