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출가자
어두운 방 한가운데, 촛불 하나가 타오른다. 위로 뻗는 불꽃은 경이롭지만, 그 아래에서는 자신의 몸인 초가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다. 불꽃은 빛을 내기 위해, 스스로를 태워야만 한다. 가장 밝게 타오르는 순간은,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순간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단지 촛불 하나의 운명이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숙명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불렀다. 모든 존재는 흘러가고, 붙잡을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은 모든 것을 삼키며, 동시에 모든 것을 낳는다”고 했다. 생성과 소멸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리듬이다.
우리 시스템의 언어로 말하면, 모든 ‘+1’의 생성 안에는 정확히 그만큼의 ‘–1’의 소멸이 내재되어 있다. 삶이라는 사건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동반하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다. 어제 보았던 몬스테라의 생존 투쟁도 이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잎을 뻗는 격렬한 성장은 곧 노화의 가속이다.
그러나 인간의 에고는 이 동전의 양면을 보지 못한다. 에고는 불꽃의 환희만을 ‘나’라 부르며, 촛농의 소멸은 외면한다. 더 오래 타고 싶어 욕망하며, 더 많이 빛나고 싶어 성취와 권력을 모은다. 그러나 더 많은 산소를 끌어들일수록 초는 더 빨리 녹아내린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 동시에 죽음으로 가는 과정과 완벽히 병렬로 진행된다.
현대적 출가자는 이 불꽃의 환희와 촛농의 비극을 동시에 바라보는 자다. 그는 삶의 강렬함 속에서 소멸의 그림자를 보고, 죽음의 필연성 속에서 지금 타오르는 삶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는 더 밝게 타오르려 발버둥 치지도, 더 빨리 꺼질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리듬 위에서,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의 빛을, 가장 맑고 고요하게 비출 뿐이다.
그리고 그 빛이 길 위의 누군가를 잠시 밝혀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