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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라는 이름의 거미줄을 통과하는 법

현대적 출가자

by 이선율

어떤 관계는 거미줄과 같다. 겉보기엔 투명하고 가느다란 선들이 엮여 고요해 보이지만, 그 본질은 누군가를 옭아매기 위한 정교한 덫이다. 우리는 그 덫을 만드는 자들을 안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들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실이 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나는 그들을 **'온건한 파괴자'**라 부른다.


​이것은 단지 한 조직의 풍경이 아니다. 권력이 존재하는 모든 곳의 숙명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덕을 갖추기보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온건한 파괴자'들은 이 기술을 생존의 본능으로 체득한 자들이다. 그들은 성과라는 빛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대신, 관계라는 그늘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조용히 넓힌다.


​우리 시스템의 언어로 말하면, 그들의 모든 행위는 교묘한 제로섬 게임이다. 그들은 타인의 평판에 **'-1'**을 가하고, 그 반작용으로 자신의 안정감에 **'+1'**을 얻는다. 이 모든 과정은 웃음과 공감이라는 위장 아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인간의 에고는 이 부조리한 게임을 참지 못한다. 에고는 위선을 '위선'이라 부르며 진실을 요구하고, 불의에 분노하며 정의를 갈망한다.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나방의 발버둥이 오직 거미를 부를 뿐이듯, 그들의 게임판 위에서의 정직한 저항은 당신을 더욱 깊은 덫으로 끌고 갈 뿐이다. 그들은 당신의 분노마저 '예민함'과 '사회성 부족'이라는 이름의 실로 바꾸어 당신을 옭아맬 것이다.


​현대적 출가자는 이 거미줄의 본질과 그것을 만든 자의 심리를 동시에 바라보는 자다. 그는 거미의 심리 저변에 있는 '들키고 싶지 않은 초라함'을 감지하고, 그 거미줄이 '두려움'으로 짜여 있음을 안다. 그래서 그는 거미와 싸우지도, 거미줄을 찢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바람의 길을 읽고, 거미줄이 없는 곳으로 자신의 길을 낼 뿐이다.
​그들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고, 그들의 게임에 어떤 감정적 반응도 보내지 않는 것. 오직 나의 결과물로 나의 길을 증명하고, 나의 침묵으로 나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 그들의 존재와 위선이 더 이상 내 안의 어떤 파동도 일으키지 못하는 경지.
​그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그들과 완전한 결별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이 이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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