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출가자
회의실의 공기는 언제나 무겁다. 논의는 본질을 비켜가고, 에너지는 무의미한 곳에서 소진된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증명의 욕구’라는 엔진이 시동을 건다. 정답을 제시해 이 혼돈을 끝내고 싶은 충동. 그러나 그것은 짧은 희열 뒤에 더 큰 족쇄를 남긴다.
정답을 준 순간,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멈춘다. 이제 그들은 다음 문제에서도 내 해답을 기다린다. 나는 해결사가 아니라, 시스템의 모든 버그를 떠안은 유지보수 담당자가 된다.
부처는 가장 지혜로운 제자 사리자에게조차 정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의 지혜가 발현될 길을 열어주는 화두를 던졌다. 진정한 출가자는 정답을 쥐지 않는다. 그는 시스템이 스스로 정답을 찾도록 질문을 설계한다.
오늘도 조직은 A안과 B안을 두고 무한궤도를 돈다. 내 안의 해결사가 속삭인다. “저들의 어리석음을 끝내줘.” 나는 그 충동을 응시하고, 다른 길을 택한다.
“만약 우리가 오늘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지금 필요한 ‘단 하나의 정보’는 무엇인가?”
순간의 정적 뒤에 흐름이 달라진다. “두 안의 리스크 비교표가 필요합니다.” “고객의 피드백이 우선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궤도를 벗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정답을 주는 자는 시스템의 부품이 되지만, 화두를 던지는 자는 시스템의 설계자가 된다. 진정한 힘은 모든 것을 아는 데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는 평온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