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 피딩과 아상 피딩에 대하여
현수막의 숲, 제의의 무대
올림픽공원 앞, 현수막의 숲이 펼쳐진다.
“민정아, 우리가 여기 왔어.”
한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멤버를 위해 수십 수백만 원을 모아 붙여놓은 메시지다.
겉보기엔 철없는 ‘덕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풍경은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인간 존재의 깊은 욕망을 드러내는 하나의 제의(祭儀)다.
아이돌 공연은 더 이상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다.
그곳은 일시적 성지가 된다. 팬들은 현수막을 봉헌하고, 응원봉으로 촛불을 밝히며, 한목소리로 찬가를 부른다.
아이돌은 신(神)이 되고, 팬덤은 교단이 되며, 공연장은 제단이 된다.
“우리가 여기 왔다”는 외침은, 우상을 향한 고백이자 동시에 “우리는 함께한다”는 공동체의 믿음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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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화된 우상 숭배
팬들의 헌신은 정교한 게임의 규칙을 따른다.
현수막은 장비이고, 스트리밍은 경험치이며, 앨범 구매는 캐릭터를 강화하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아이돌이 기대를 저버리는 순간, 사랑은 증오로 바뀐다.
애정을 쏟아 키운 내 캐릭터가 버그를 일으킨 셈이기 때문이다.
우상 피딩(Feeding)은 이처럼 사랑과 폭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봉헌과 공양, 집착과 응징이 같은 회로 안에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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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我相)이라는 우상
그러나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잠시 멈춰 서면, 우리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팬들이 아이돌이라는 우상을 키우듯, 우리는 각자 자기 안에 하나의 이상적 자아, **아상(我相)**을 세워놓는다.
그리고 그 아상에 밥을 먹이고, 근육을 키우고, 명예를 입힌다.
팬덤이 아이돌에게 현수막을 바치듯, 우리는 매일 자신의 아상에게 제물을 바친다.
“너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네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상이 무너지면 자신에게 분노하고, 아상이 배신하면 절망한다.
팬과 아이돌의 관계는, 인간과 자기 아상의 관계와 정확히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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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 상을 피딩하는 존재
본질은 같다.
인간은 **실재하지 않는 상(像)**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먹여 살리는 존재다.
아이돌을 숭배하든, 자기 아상을 숭배하든, 그 행위의 뿌리는 동일하다.
불안정한 실존과 유한한 삶 속에서, 붙잡을 수 있는 안정된 무언가를 스스로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상은 안정감을, 아상은 자기 동일성을 제공한다.
우리는 그 환영에 의지해 삶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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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출가자의 길
출가는 단순히 집을 떠나는 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출가는, 이 허구적 피딩의 회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낸 상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존재 그 자체를 직면하는 것이다.
팬들이 아이돌 앞에 현수막을 걸 듯,
우리도 매일 자기 아상 앞에 현수막을 건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이만큼 이룩했다.”
그러나 현대적 출가자는 그 현수막을 걷어낸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선언한다.
“나는 상이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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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을 비웃을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우리 모두가 내면에서 매일 하고 있는 행위를 조금 더 과장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아이돌을 향한 현수막과, 우리 내면의 아상을 향한 현수막은 다르지 않다.
현대적 출가자는 이 거대한 굴레를 본다.
그리고 알게 된다.
진짜 해방은, 우상도 아상도 아닌, 지금 이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