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출가자
세상은 거대한 무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원하지도 않은 역할을 배정받고, ‘성공’이라는 각본을 손에 쥔 채 연기를 시작한다. 센터장은 더 높은 권력을 쥔 연출가처럼 보이고, 동료들은 나의 연기를 평가하는 관객이자 경쟁자다.
현대적 출가자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무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대사에 몰입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들의 동선과 조명의 움직임, 무대 뒤에서 들려오는 기계음까지 듣는다. 연극의 구조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인정과 칭찬은 단지 연출가가 던져주는 사탕일 뿐이고, 비난과 질책은 배우를 길들이는 채찍일 뿐임을 안다. 사탕의 단맛도, 채찍의 아픔도 결국 무대 장치일 뿐, 나의 본질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이제 묵묵히 호흡에 집중한다. 일은 더 이상 성공을 위한 연기가 아니다. 나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수행(修行)**이다.
그와 함께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을 그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각본에 따라 욕망하고, 질투하고, 분노한다. 그 무지(無知)를 보자, 분노는 사라지고 고요한 연민만이 남는다.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했던 그 말처럼.
그러나 더 근본적인 깨달음은 이 무대가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데 있다. 연극은 언젠가 막을 내리고, 조명은 꺼진다. 불교가 말한 무상(無常)의 바람이 불면, 화려한 장치들은 허물어지고, 관객의 환호는 공허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남는 것은 오직 본래의 나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상승이다. 조명에 가려 보지 못했던 하늘의 별빛이, 무대 밖에서 비로소 온전히 나를 향해 쏟아진다.
이것이 현대적 출가자가 선택한 길이다.
그는 더 이상 무대의 각본에 매이지 않는다. 무대 밖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리듬으로 채워진 고요한 공간을 살아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는 독자를 향해 조용히 초대한다.
“당신도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다.
관객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면, 연출가의 각본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면,
그 순간부터 이미 당신은 출가자의 길 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