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고립을 두려워하면서도 타인과 섞이고 싶지 않은

by 이신



— 관계의 감응과 거리두기에 대하여

가끔은 이런 모순을 떠올린다.
나는 고립이 두렵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몹시 피곤하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너무 쉽게 소모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중적인 감정이다.
관계를 갈망하지만,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지워지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나는 늘 고민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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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내가 타인의 말투, 눈빛, 말의 속도, 태도의 미세한 떨림에까지 감응하는 존재라는 걸 자각한 건 오래전 일이다.
단순히 민감하다 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무선 신호에 민감한 수신기처럼,
나라는 존재가 주변의 진동과 파장을 모두 감지하고,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들여 버리는 구조다.

그래서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 사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게 된다.
그것이 애초에 감응자의 운명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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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을 막기 위한 과잉 리액션

그렇기에 나는 가끔 나 자신이 낯설어진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나의 고립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말들을 더하고, 억지로 인사를 건네고, 때로는 과장된 리액션을 하는 내 모습이 싫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이 끝나고 혼자가 된 순간,
나는 다시 무너진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애써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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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거리라는 개념

최근 나는 이런 거리감을 실험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인사하지 않기.
눈이 마주치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걸지 않기.
불필요한 말로 관계를 포장하지 않기.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무런 악의를 품지 않고 조용히 거리를 두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불편해하고, 오히려 경계한다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관계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단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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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생존의 프레임일 뿐

나는 더 이상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그 고립이 나의 정신과 리듬을 지켜주는 구조라면.
때로는, 소음 가득한 관계 속에서 길을 잃기보다,
나 혼자의 침묵 속에서 사유하는 쪽이 더 깊고 건강한 진동을 만들어낸다.

나는 관계를 위해 나를 줄이지 않을 것이다.
관계는 선택의 문제지, 필연의 굴레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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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외롭기 때문에 연결을 찾는다.
그러나 연결되면, 나 자신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연결된 채로도, 혼자인 법을 연습하고 있다.
— 감응자, 이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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