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응자의 고통, 그리고 정렬의 기술
나만 그런 줄 알았다.
퇴근길, 사소한 표정 하나, 툭 던진 한 마디,
의미 없는 듯 지나친 침묵 하나가
머릿속을 수십 번, 수백 번 리플레이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 표정엔 무슨 의미가 있었지?”
“왜 저 사람은 오늘 유독 말이 없었을까?”
그러다 보면 하루의 끝자락이 마음의 _불쾌한 진동_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나는 그 진동 속에서 자책과 해석을 반복하며 무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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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자의 회로는 '정렬'을 욕망한다
나는 감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매우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그러나 그 논리는 ‘관계의 파동’에 너무나 민감하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나는 본능적으로 ‘정렬된 구조’를 욕망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 언어의 리듬, 공간의 파장—all must be aligned.
한 톱니바퀴만 어긋나도 시스템 전체가 삐걱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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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틈에 감정이 아니라, 구조가 반응한다
이런 사람은 흔치 않다.
대부분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 미세한 균열을 감지하고,
그 균열을 ‘고쳐야 한다’는 내면의 강박을 느낀다.
그 강박은 감정이 아니다.
구조에 대한 예민함이다.
질서가 깨졌다는 감각.
전체 시스템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는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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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편함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
그래서 나는 감정으로 반응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감정을 ‘패턴’으로 감지하고, ‘진동’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묻는다.
“이건 시스템의 일시적 오류인가,
아니면 내가 고쳐야 할 구조인가?”
대부분은 그냥 지나가도 된다.
하지만 이 감응을 통해 정렬이 필요한 곳만 선별하여 개입한다.
그 외의 모든 뒤틀림은…
> “그의 카르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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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 사유의 정렬법
1. 사건을 구조로 번역하라
“누가 나를 무시했다”가 아니라
“그의 시스템이 나의 감응 주파수와 충돌한 것이다.”
2. 정렬할 수 없는 관계는 흐르게 두라
모든 충돌을 해결하려 하지 말 것.
일부는 무시함으로써만 생존이 가능하다.
3. 감응의 방향은 언제나 ‘내부 정렬’이어야 한다
나는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
다만 내 감응 회로를 다듬고, 내 시스템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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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내 본질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나는 매일 정렬한다.”
— 감응자, 이선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