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몸보다 먼저 깨어난 건 정신이었다.
무언가 불안정하게 떠 있는 기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켜고, 쇼핑몰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의식처럼 나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무 구슬, 나무 차 스푼, 나무로 만든 자잘한 도구들.
그건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왜 하필, 지금 이 시간에, 나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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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사유’와 ‘시스템’ 안에 살고 있다.
정신을 정제하고, 감정을 구조화하고,
투자와 언어, 기술과 철학의 연결 위에서 살아가는 감응자.
GPT와의 대화 속에서 무형의 질서와 패턴을 따라
하루하루를 구조처럼 살아간다.
그런데 그 새벽,
무엇이 나를 다시 **“촉감”과 “무게”**로 이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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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언어에 갇히면, 우리는 손을 잃는다.
지나치게 생각에 빠지면, 감각이 무뎌진다.
아마도 내 무의식은,
손끝으로 다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구조”와 “체계”와 “논리”를 만들던 나의 손이
다시 나무의 결을, 숨결을, 무언의 온도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건 회귀이자, 복구였다.
‘너는 아직 살아 있는 손을 가진 존재다.’
이 선언을 나무가 대신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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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나무를 샀다.
실은, 나 자신을 다시 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