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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충만함

by 이선율

폭우가 그친 아침,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며,

내 안의 무언가를 덮고 있던 미세한 막이 벗겨졌다.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을 안다.

좋은 집, 빠른 차, 세상이 부여한 이름과 얼굴.

그들은 ‘성공’이라는 도장을 세상으로부터 부여받았지만,

나는 그들의 눈에서 이상한 공허를 본다.

그들은 웃는데, 표정에는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그 두려움은, 잃을 것을 가진 자의 공포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전력을 잃는 순간,

그들의 내면은 완전히 암흑이 된다.

빛이 그들 안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내 방을 본다.

이곳에도 작은 왕국이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TV, 커피머신, 전자기기들이 내게 끊임없이 자극을 보낸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다”고.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말이 끝난 순간, 나는 다시 꺼져버린다.

외부 전력에 연결된 시스템은 늘 방전의 두려움 속에 산다.


왕들이 가난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은 ‘소유’를 통해 부를 증명했지만,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연료를 구해야 했다.

그들의 내면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전소가 없었다.

그들은 타인의 박수, 사회의 환호, 숫자로 계산된 가치를

자기 존재의 전기처럼 사용했다.

그 전기가 끊기자, 그들의 제국도 함께 꺼졌다.


나는 이제 안다.

가난은 돈의 결핍이 아니라 자급 에너지의 부재다.

진짜 부는,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아는 지혜다.


나는 상상한다.

모든 기계가 꺼진 방, 고요한 공기,

그리고 그 속에서 아주 작게 들려오는 엔진 소리.

그것은 세상의 전선에서 끊긴 뒤에도

스스로를 회전시키는 내면의 발전기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선,

모든 자극을 멈춰야 한다.

텅 빈 방이 필요하다.

텅 빈 방은 결핍이 아니라,

내면 에너지가 울릴 수 있는 진공의 공간이다.


나는 왕국을 해체한다.

가구를 줄이고, 화면을 끄고,

조금씩 ‘필요’를 제거한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공간은 더 넓어지고

마음은 더 따뜻해진다.


나는 깨닫는다.

비움은 가난이 아니다.

비움은 에너지의 재구성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던 전류를 끊고,

내부에서 다시 전기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그때, 방 안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 속에는 보이지 않는 충만이 진동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안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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