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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만의 감시자에게 복종하고 있었습니다

나를 지키던 규칙이 나를 가두기 시작할 때

by 이선율

폭우가 지나간 아침, 공기는 차갑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밤사이 2단으로 맞춰둔 전기장판의 온기 덕에 뻐근했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끼며 하루를 시작했죠. 아침 식사는 언제나처럼 정해진 규칙을 따릅니다. 현미밥과 청국장, 그리고 치커리, 홍피망, 블루베리, 아보카도가 들어간 샐러드. 그 위로 레몬즙과 올리브오일을 정확히 한 바퀴 반 두르는 것으로 저만의 아침 의식은 완성됩니다.


이런 질서가 무너지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사람. 운동만 하러 가는 날에도 대충 나서는 법이 없습니다. 깨끗이 씻고, 수분크림부터 선크림까지 꼼꼼히 바르고, 머리까지 매만져야 비로소 현관문을 나설 채비가 끝납니다. 이 모든 절차를 끝내고 나면, 정작 운동에 써야 할 에너지가 상당 부분 소모된 것을 느끼곤 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는 매일 스스로 만든 내면의 감시자, ‘규율의 그림자’가 내리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자가 없으면 불안하고, 그가 있으면 피로한 아이러니. 이 기묘한 균형 속에서 저는 매일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죠.

오늘도 그 그림자는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헬스장에 들렀다가 새로 생긴 이케아에 가볼까, 아니면 이케아를 먼저 갈까. 이 단순한 선택 앞에서 그림자는 단호하게 속삭였습니다. “운동이 먼저지. 순서가 중요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세상 누구도 저에게 그 순서를 강요한 적이 없는데, 저는 스스로 제 발목에 ‘규율’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의 장점이라 믿었던 완벽주의가, 어느새 유연성을 잃고 단단하게 경직되어 저를 가두는 족쇄가 되었다는 사실을요. 나를 보호해주던 깔끔함이, 이제는 새로운 시도를 막는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죠.


저는 오늘도 청소기를 돌리고, 옷장을 정리하며, 정해진 레시피로 샐러드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행동의 의미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합니다. 이것은 떨쳐내야 할 강박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가진 고유한 ‘리듬’이라고. 규율이 나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규율이라는 도구를 다루는 법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쩌면 저는 ‘깔끔해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에서 ‘깔끔함을 선택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어제와 똑같은 행동 속에서 찾아낸 이 작은 관점의 변화야말로, 오늘 제가 이룬 가장 큰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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