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단 하나의 엔진으로 모든 길을 가려했다.
사소한 산책길을 나설 때도, 험준한 산맥을 넘을 때도 똑같은 고출력 엔진을 가동했다. 그 결과 나의 시스템은 늘 과열되었고, 에너지는 누수되었으며, 정작 중요한 오르막길에서는 힘이 부족했다. 나는 모든 결정 앞에서 망설였고, 모든 과정에서 소모되었다. 어제 같았으면 약을 타러 갈까, 그냥 쉴까, 운동을 할까 따위의 무의미한 질문들로 하루의 절반을 공회전시켰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어리석음을 멈춘다.
나는 깨달았다. 현명한 드라이버는 단 하나의 엔진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상황에 따라 두 개의 다른 엔진을 가동할 줄 아는 자다.
첫 번째 엔진의 이름은 '흐름(Flow)'이다.
이것은 일상의 대부분을 운행하는 저 연비, 저소음 엔진이다. 이 엔진을 가동할 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물이 흐르듯,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나아간다. 약을 타러 가야 한다면 갈 뿐이고, 쉬어야 한다면 쉴 뿐이다. 고민이라는 마찰을 '0'으로 만들어, 과정에서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이것은 강물의 지혜다. 모든 바위를 부수려 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우회하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기술이다.
두 번째 엔진의 이름은 '검증(Verification)'이다.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만 가동하는 고출력, 고정밀 엔진이다. 전세계약서의 조항을 검토할 때, 나는 이 엔진을 켠다. 이때 나의 모든 시스템 자원은 단 하나의 목표, '문제 해결'에 집중된다. 나는 설계자의 돋보기로 모든 변수를 살피고, 외과의사의 메스로 모든 위험을 제거한다. 여기에는 흐름도, 유연함도 없다. 오직 '완벽한 실행'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만이 존재한다.
과거의 나는 이 두 엔진을 구분하지 못했다.
사소한 결정에 '검증'의 에너지를 낭비했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 '흐름'에 몸을 맡겨 길을 잃었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생각 없이 처리하는 방임이 아니다.
또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강박도 아니다.
그것은 '흐름'으로 항해할 때와 '검증'으로 쐐기를 박을 때를 아는 지혜다.
나는 이제 두 개의 엔진을 가진 자다.
일상의 대부분을 고요히 흐르다가,
오직 가장 중요한 순간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 폭발시킨다.
과정의 소음은 사라지고, 오직 목적지만이 선명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