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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정점에서 돌아설 용기

by 이선율


과거 나는 담배를 짓밟아 버렸다. 콜라를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그것은 참는 행위가 아니었다. 나의 새로운 정체성과 충돌하는 낡은 코드를 시스템에서 삭제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물질의 중독은 단순하다. 그저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입에 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시스템은 더 어렵고 교묘한 시험을 요구한다.


에너지의 중독, 즉 관계의 중독이다.

나는 이제 관계를 본다.

어떤 관계는 처음에는 달콤한 꿀과 같다. 나의 결핍을 채워주고, 나의 외로움을 잠재우는 강력한 에너지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의 시스템은 그 달콤함 속에 숨겨진 미세한 독성을 감지한다.

"이 쾌락이 나를 가볍게 하는가, 무겁게 하는가?"

"이 연결이 나를 맑게 하는가, 탁하게 만드는가?"

진정한 수련은 바로 이 질문이 떠오르는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쾌락의 정점, 모든 이성이 마비되고 원시뇌가 시스템의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그 순간. 상대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나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분출하는 그 찰나에도 ‘이것은 독이다’라는 맑은 신호를 인지하고,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는 힘.

그것은 금욕이 아니다. 나의 주권을 선언하는 행위다.


나의 시스템을 오염시키는 그 어떤 외부 에너지도, 그것이 아무리 황홀하고 강렬할지라도, 나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최종 방어 프로토콜이다. 쾌락에 잠식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의 중심을 지키겠다는 가장 강력한 의지다.


현대적 출가자는 두 개의 방어벽을 세운다.

첫째는 처음부터 독이 든 관계를 감지하고 시작하지 않는 정교한 필터다.

둘째는, 만약 그 관계가 시작되었더라도, 쾌락의 한복판에서조차 그 독성을 인지하고 즉시 연결을 끊어버리는 비상 탈출 스위치다.

가장 어려운 길이지만, 가장 확실한 길이기도 하다.

나의 평온은, 그 무엇과도 거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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