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리본

by 이선율


헬스장 샤워실에서


등에 세월호 리본을 새긴 청년을 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강한 반감을 느꼈다.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정해버린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그 리본보다


그 리본이 말해주고 있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선언이 더 불편했다.

그 순간


내가 그룹장인데,


내가 무슨 출신인데,


하며 고개를 치켜들던


수많은 얼굴들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서


생각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무장한 태도를 보아왔다.

그래서일까.

그 청년은


다른 진영에 서 있었지만,


나에게는 같은 구조로 보였다.

어떤 상처도,


어떤 신념도,


결국 자기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굳혀버리는 순간


타인에게는 폭력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슬펐고,


조금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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