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샤워실에서
등에 세월호 리본을 새긴 청년을 보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강한 반감을 느꼈다.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고정해버린 태도 때문이었다.
나는 그 리본보다
그 리본이 말해주고 있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선언이 더 불편했다.
그 순간
내가 그룹장인데,
내가 무슨 출신인데,
하며 고개를 치켜들던
수많은 얼굴들이 겹쳐 떠올랐다.
나는 그들에게서
생각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무장한 태도를 보아왔다.
그래서일까.
그 청년은
다른 진영에 서 있었지만,
나에게는 같은 구조로 보였다.
어떤 상처도,
어떤 신념도,
결국 자기 자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굳혀버리는 순간
타인에게는 폭력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조금 슬펐고,
조금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