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3_눈보라
김훈의 남한산성을 3페이지 읽었다. 오전엔 김훈의 강연영상을 봤다.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글의 뼛다귀만 가지고 쓴다 등 기억에 남는 말이 많았다. 그는 강연에서 책을 읽는것 처럼 말하면서도 말이 흐트러지지 않고 시냇물처럼 줄줄 흘러가는 달변을 구사했다. 그의 말은 기교가 없으면서도 정교했다.
그는 기계가 무서워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쓰고, 라디오도 버튼 하나만 달린걸 산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연필을 쥐고 몸을 느끼며 밀고나가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말은 검객들이 말하는 검신합일의 경지, 어떤 무협에 나오는 고수의 한마디 처럼 들렸다. 남한산성에서 김훈이 쓴 문장들은 차가웠다. 글만으로 그때의 한기가 느껴졌다 대동강이 얼어붙었는지를 묻는 임금의 대사에 장면이 그대로 그려졌다. 문장 어디에도 눈보라를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글 전체가 눈보라처럼 3페이지에 휘몰아쳤다. 나는 사실 이십년도 더 전인 2천년대 초반 신방과 대학생 시절 김훈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글은 그가 칼의 노래 서문에 쓴 그 온몸에 전율이 일게하는 그 문체를 흉내내온 과정일지 모른다. 일자진을 펼쳐 적을 맞이하리로 끝나는 그 서문은 내가 그동안 읽어본 글중 가장 멋지고 서늘하며 비장한 글이었다. 어쩌면 유명한 작가는 문체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가 원래 그리 비장한 인간이었기에, 그 비장한 글이 내게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이십년이 지나 다시 우연히 읽어본 김훈의 글은 색달랐다. 이십대의 내가 읽던 느낌과 사십대 후반이 된 내가 읽는 느낌은 같으면서도 달랐다. 이제는 그 글들 이면에 서린 피로감과 고통이 읽혀지는듯 했다. 글이 멋있다는 느낌보다 그 글의 피로감, 주인공들의 남루함, 삶의 치졸함 같은것들이 지난 이십년 나의 삶과 겹쳐지며 내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때는 글을 어꺠로 읽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혈관으로 읽는 느낌이었다. 가끔 가다 보이는 강한 문장들은 혈관속에 쏘아진 어떤 약물처럼 내 심장을 향해 발사되었다가 다시 역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며 내 온몸을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는데, 나는 취한듯 했다. 그래서 많이 읽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을수록 글 자체보다 그 행간에 담긴 너무 많은 의미들이 같이 달라붙어 피로감이 올라왔다.
3페이지를 읽고 오늘은 패스하려던 헬스장을 다녀왔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길 눈발이 정말 펑펑 쏟아졌다. 허기를 달래려고 잠시 마트에 들러 두부를 사고 나온 동안 내 자전거의 안장에 흰눈이 소복히 쌓였다. 미끄러질까봐 한발 한발 조심히 페달링을 하며 내리막길을 달릴떄 전봇대 흰색광선 아래로 눈보라가 선명하게 휘몰아쳤다. 두부를 지키려는 내 삶의 책임앞에 오전에 읽은 남한산성의 눈보라가 겹쳐보였다. 그 순간 아 어쩌면 나도 김훈만큼 이순간의 눈보라를 쓸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 재능에서 나온 자만이 아니라, 내가 처음 그의 글을 읽고 지난 이십년간 경험해온 삶의 치졸함과 번거로움이 어쩌면 그의 무게보다 더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떄문이었다. 그정도 무게라면 그정도 쓸 수 있지 않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 마치 누가 정해놓은 우주 법칙처럼 내안에 팡 하고 터졌다. 개소리였지만 잠시 눈보라는 내 글감을 위해 속도를 멈춘듯 느리게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