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2#점액질
#1
목안에서 강한 단내가 느껴졌다. s는 오늘 오전 10시, 건진을 앞두고 어제 저녁을 굶었다. 밤새 목구멍으로 지방이 기화되어 빠져나간듯 새콤하고도 쓰린 맛이 목 깊숙한 곳에서 느껴졌다.
s는 침대에서 거의 굴러 떨어지듯 몸을 일으켰다. 단 한 끼를 굶었을 뿐인데 기운이 없었다. 체중계는 83.7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루 만에 1.1킬로가 빠졌다. s는 샤워장에 비친 나체를 정면/측면/후면 돌려가며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뱃살은 잠시 머물러있는 수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생각났다. 쾌변 한 번이면 2킬로 정도가 바로 내려갈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s는 욕실선반에 핸드폰을 툭하고 엎어놓았다.
s는 머리를 말리며 아직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했다. 안다르에서 나온 기모 폴라티에 조거핏 팬츠를 입자 몸의 굴곡선이 늘씬하게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거실 거울로 비치는 얼굴 옆선이 샤프해 보였다. 며칠 하체 운동의 여파로 엉덩이 오른쪽 근육이 꿈틀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힘을 주면 오른쪽 엉덩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게 여자였지만 성적으로 매력 있어 보이는 느낌은 기분 좋았다. 오늘 얼굴은 괜찮은 게 분명했다.
#2
"숨을 멈추라고요!"
간호사가 앙칼지게 말했다. s는 긴장감을 느꼈다. 양팔을 위로 올린 채 상의를 개봉한 채 벽에 붙어있는 자세였다. 양팔에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팔을 살짝 움직이자 다시 한번 그녀가 공기 속에 칼을 뱉는 것 같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팔을 움직이지 말라고요!"
심장초음파실 입장 할 때부터 그녀에게 말을 붙인 적도, 기분 나쁘게 한 적도 없었다. 아니 아예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가뜩이나 오늘은 로즈마리 향 바디로션도 일부러 구석구석 바르고 오지 않았던가. s는 무언가 자신의 노력이 무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심사에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탈락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기구만 가슴팍으로 파고들었다.
s는 무언가에 꿰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저린 양팔을 오른쪽 발가락의 힘으로 버티며 숨을 꾹 참았다. 불편한 목의 위치를 보정하기 위해 다리가 기묘한 자세로 뒤꼬였다. 검사대에 올려진 불량품처럼 느껴졌다. 이 방에서 나가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근데, 말의.. 톤이. 짜증스러우셔서 몸이 긴장이 돼요"
"제가요?"
어둠 속에서 그녀의 대답은 그럴 리가 없는 대상에게 처음으로 그렇다고 말하는 말에 대한 반격처럼 퉁 튕겨져 나왔다. 대화가 길어져도 이 대화는 제자리일 것이라는 확신이 빠르게 왔다. 자연스럽게 몸이 분노 대신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모드로 바뀌었다. s는 숨을 가다듬었다.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녀는 어느 틈엔가 몸을 뒤로 돌린 터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뒷모습만 어렴풋이 시선에 잡혔다. 생각해 보니 입장부터 퇴장까지 그녀와 시선을 한번 교환한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a예요. 심장초음파는 한 명밖에 없어요"
s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가슴과 배에 묻은 점액질을 티슈 4장으로 대충 닦아 냈다. 그 점액질은 동의 없이 각인된 어떤 흔적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그녀의 고용 안정성과 직장 내 입지가 자신의 그것과 비교되었다.
저렇게 당당히, 제멋대로 살아본 적 있었던가?
나는.
단 한 번이라도?
#3
"근데 저분 왜 저러시는 거예요?"
다음 건진 코너를 안내하기 위해 중년의 간호사가 차트를 건네받으려는 순간 s가 말했다. 간호사는 흠칫하며 시선을 s의 복부 쪽으로 낮췄다. s는 "친절은 아니어도 기분 나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키웠다. "말하다 보니 더 기분 나쁘네"라는 초라한 말이 원치 않았는데 허공에 따라붙었다. "그 말은 제발 공감 좀 해줘"라는 애원 같기도 했다. 간호사는 시선을 복부에 멈춘 채 s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s는 문득 자신이 진상 환자처럼 느껴졌다. 그 복도에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는 것은 s밖에 없었다. 문득 아직도 남아있는 복부의 점액질이 미끈미끈하게 신경 쓰였다.
"네. 이따 데스크에 가서 말씀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