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와 f

260326

by 이선율

11시 20분.

트레드밀을 20분 뛰고 난 뒤였다.


s는 바디워시로 겨드랑이와 성기 주변만 거품을 냈다. 남은 거품으로는 항문을 쑤셨다. 온수를 틀었다. 머리 위에 걸린 네모판에서 굵은 물줄기가 쏟아졌다. 아픈 오른쪽 날개죽지를 물줄기에 가져다 댔다. 잠시 뻐근함이 내려갔다. 물을 잠갔다. 1분쯤 걸렸다. 이번 달 근무시간이 모자랐다. 4일 남았는데 의무 시간이 36시간 48분이었다. 어제오늘 샤워를 서두른 이유였다.


점심을 테이크아웃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내 헬스장을 나와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자 지하 1층에 사람들 행렬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입구 메뉴판을 확인하고 있었다. 갑자기 음식을 사들고 10층까지 올라가 다시 봉투를 열고 그것을 먹고 치우는 일들이 자질구레하게 느껴졌다. 그냥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분간 국물은 피하란 조언을 며칠 들은 터였다. 자주 가던 국물 코너를 비껴나 한식코너로 갔다. 돈목살구이, 청경채무침, 약간 물김치 같은 건더기, 호박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자리에 내려놓고 공용 밥통으로 걸어가 현미밥 150그램쯤을 눈대중으로 떴다. 닭가슴살 한 봉지는 뒷바지춤에 꽂힌 터였다. 공용 밥통 옆 전자렌지에 주둥이를 살짝 열어 던져놓고 55초를 맞췄다. 땡 소리와 함께 꺼내니 열린 주둥이 사이로 땀 같은 물이 고기 사이로 줄줄 흘러내렸다. 밥맛이 좋았다. 추가반찬 오징어튀김 네 개와 두부까지 싹 비웠다.


퇴식구에서 나오는 길에 밖에 햇살이 좋았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또 햇살 쪽으로 발을 옮겼다. 공원 한 바퀴를 돌았다. 목련꽃이 암컷 거위의 얼굴처럼 허공에 수십 개 매달려 있었다. 공원 곳곳에 봄기운이 들며 산수유와 황금사철, 자작나무 등에서 노랗고 파란 싹이 피어났다. 예민했던 신경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에 쥔 콜드브루를 홀짝이며 시계를 봤다. 12시 7분이었다. 발걸음을 빨리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10층을 누르자 d라는 문자가 떴다. 마침 d문이 열렸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들어갔다. d를 놓치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얼굴들이었다. 마지막 한 자리가 남았다. 발을 넣으면 이마에 엘리베이터 문이 닿을 자리였다. 옆부서 신입 여직원이 그 자리로 폴짝 뛰어올랐다. 입술이 체리빛으로 물들어 뾰로통하게 내밀어져 있었다. 살짝 그녀를 밀면 탈 수도 있었다. s는 그 무리들을 바라보며 문 닫히길 기다렸다.


문이 닫히자마자 다시 10층을 눌렀다. f가 뜨며 등뒤에서 f문이 열렸다. s와 여직원 한 명만 탔다. 여직원은 황급히 닫힘 버튼을 눌렀다. s는 거울에 뒷머리를 기댔다. 능형근이 잠시 쉬었다.


10층은 불이 꺼져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머리를 기댔다. 잠시 후 불이 켜졌다. s의 입가에 침이 흐르고 있었다. 30분이 지난 터였다. 아무도 깨우지는 않았다. 칫솔을 들고 일어섰다. 피로가 약간 풀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