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산책

260331

by 이선율

260331 식후산책

11시 20분. 부서 주간보고가 끝났다. s는 제일 먼저 일어섰다. 태블릿 모서리로 버튼을 눌렀다. 털컥 소리가 나며 잠긴 문이 열렸다. 한손으로 태블릿을 쥐고 겨드랑이에 텀블러를 꼈다. 오른손으로 문을 당겼다. 문은 금세 닫혔다. 엉덩이를 내밀어 문을 막았다. 뒤에서 j가 따라나오며 문 손잡이를 넘겨 받았다.

엘베문이 열렸다. s는 머리를 거울에 기댔다. 엘베안은 수근거리는 소리로 가득찼다.

땡. 13층입니다.

엘베문이 열리자마자 s는 자리로 쿵떡쿵떡 걸어갔다. 뒤쪽으로 삼삼오오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바닥은 안이 비어있는듯 퉁 퉁 소리를 냈다. 자리에 텀블러를 올려놓고 가죽 점퍼를 벗었다. 의자에 걸려있던 네이비 울자켓으로 갈아입었다.

책상위에 자연해동 시켜둔 닭가슴살 한팩을 쥐었다. 비닐밖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았다. 왼쪽 엉덩이에 냉기가 스몄다. 엘베로 나갔다. 옆자리 h가 엘베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돌아보며 어이. 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s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볍게 허공에 목례를 했다. 오늘 h는 보고를 했다. 그가 진행한 사업이 수주를 했다. 오늘 그는 자화자찬이 많았다. s는 인사 대신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너도 고생 많았지. h가 엘베 틈새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깔았다. 엘베문이 열렸다. s는 다시 거울에 뒷머리를 기댔다. 능형근이 잠시 풀렸다. h가 비뚤하게 서서 "제안끝났다고 잘챙겨입고 말이야" 라고 말했다. s는 빙긋 웃었다. h가 다시 "아 제안 끝냈으니 잘챙겨입는게 맞는거구나" 하고 자문자답했다. s는 "그렇죠"라고 답했다. 대화라기 보다는 각자 허공에 내뱉는 소리였다.

1층까지 엘베는 한참 내려갔다. s는 h의 펑퍼짐한 바지를 쳐다봤다. 골반 부분은 넓게 벌어지고 발목부분에서 잘린 카고형 그레이 팬츠였다. 엉덩이쪽 주머니가 앞쪽에 붙었다. "바지 예쁘네요" s가 말했다. "응 xxx거야" 무슨 브랜드 이름을 말했는데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냥 넘어갔다. "이런 스타일 바지는 뭐라고 불러요?" s가 물었다. 테이퍼드, 원턱, 투턱 같은 답을 기다렸다. h가 멍하니 바라봤다. "예를 들자면 테이퍼드라던지" s가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응 테이퍼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h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비싸보이네요" s가 한마디 더 붙였다. "그렇게 비싸진 않아" h가 말했다. 엘베가 열렸다. "난 한대 피고" 검색대를 지나며 h기 말했다. 작년까지 같이 담배피러 다녔던 사이였다. s가 술담배를 다끊은 이후엔 같이 나갈일이 없었다. 아침 인사를 안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옆자리였지만 거의 두달에 한마디 정도 나누었다. "다녀오세요" s는 식당쪽으로 혼자 걸어가며 인사했다.

30분부터 배식인데 20분부터 특식줄이 입구까지 튀어나왔다. s는 끄트머리에 섰다. 영양솥밥에 낙지볶음이었다. 30분이 될때까지 줄은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 꼬리만 늘어났다. s자 줄이 일곱 여덟겹으로 쌓였다.s는 세겹 중간쯤에 섰다. 뒤에선 키가 큰 남자는 계속 1열쪽을 들여다보았다. 포스기에 찍힌 금액을 입으로 읽었다. 뒷사람에게 수군거렸다. 삼천오백원인가? 계속 확인했다. 그가 몸을 기울일때마다 땀냄새가 훅 풍겼다. s가 식판을 쥐려는 순간 그가 다시 몸을 기울였는데 그의 어깨가 s의 등을 밀었다. s가 살짝 돌아보며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s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포스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포스기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s는 휴지 한웅큼과 젓가락을 담으며 씨 라고 살짝 말했다. 해파리 냉채 한접시 위에 한접시를 들어 엎어쳤다. 빈접시는 엎어친 접시 밑으로 깔았다. 솥밥을 식판에 올리고, 텀블러처럼 생긴 보리차를 올렸다. 낙지볶음은 사진의 1/3정도가 담겼다. s는 아무말 없이 식판을 근처 1인 식탁에 올렸다. 뒷주머니에 찬 닭가슴살을 공용 전자렌지에 넣고 55초를 맞췄다. 작은 접시를 하나 들고 추가 반찬대로 걸어갔다. 손바닥의 반만한 빈대떡이 주황색으로 부쳐져 있었다. 한 여자가 s앞으로 쑥 들어오더니 집게로 빈대떡 다섯개를 집었다. 2개가 정량인 접시에 다섯개가 담겼다. 여자는 손바닥으로 나머지 3개를 받쳤다. 한손으로는 양파고추조림을 펐다. s도 빈대떡을 담았다. 한입 베어물자 물렸다. 텁텁했디. 낙지볶음은 설탕을 잔뜩 뿌린 떡볶이 맛이 났다. 솥밥은 밥을 옮겨담자 깔끔히 다 떨어져나갔다. 숭늉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s는 해파리냉채 2접시와 닭가슴살만 번갈아 먹었다.

식판을 레일에 밀어넣었다. 털컹 소리를 내며 식판은 비스듬히 밀려갔다. 레일 위로 퐁퐁 거품이 일어나 있었다. 뒤에 따라오던 여자가 국물이 잔뜩 든 식판을 뒤이어 밀었다 국물은 출렁대며 레일위로 붉은 물을 토해냈다. 여자는 굳이 s의 등뒤에 붙었다. s가 냉수를 뜰때 뒤에 섰고, 이를 쑤실때 바로 옆에 붙었다. s가 한칸 옆으로 이동하자 다시 한칸 옆으로 붙었다. s는 거울에 이를 비추며 이쑤시개로 안쪽을 더 크게 쑤셨다. 그녀는 s의 입안을 흘깃 보고는 맞은편으로 사라졌다.

퇴식구앞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햇살이 쏟아졌다. 오늘 의무근무시간이 8시간 34분 남았다. 바로 사무실로 가는게 맞는데 계단을 올랐다. 뒷짐을 쥐고 계단 하나 하나를 천천히 밟았다. 공원으로 향하는 입구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가까이 보는것보다 군체를 보는것이 더 아름다웠다. 공원 안쪽으로 휘적 휘적 걸었다. 뒤에서 erp도 ai로 대체되지 않겠어요? 이런 말들이 들렸다. 50대 아저씨 세명이 일렬로 걸었다. s는 옆의 벚꽃나무쪽으로 몸을 비켰다. 세명은 s를 추월해 지나갔다.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s는 벚꽃나무를 천천히 아래위로 바라봤다. 몸통은 불에 탄듯 짙은 검은색이었다. 몸통에서 눅눅한 습기가 묻어나왔다. 가지뿐만 아니라 몸통에도 녹색순이 몇개 올라와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는 흰 꽃도 피어 있었다. 조금더 과학자 처럼 들여다 봤다. 손톱보다 작은 개미들이 나무를 타고 오르고 내렸다. 위에서 내려오는 개미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개미와 부딪히자, 잠시 둘은 더듬이를 비비더니 각자 길을 갔다. 잠시후 다시 다른 개미를 만나자 또 행동을 반복했다. 세마리가 길목에서 만나자 한마리가 몸을 U자로 꺾어 아래쪽 개미를 먼저 보내고, 본인이 제일 나중에 지나갔다. 와중에 더듬이 비비기는 잊지 않았다.

노란 산수유꽃은 거의 다 떨어졌다. 허공에 마른 코피같은 점들만 붙어있었다. s는 무릎을 굽혀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뒤졌다.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자 열매는 손가락 위에서 문드러졌다. 빨간 젤리같은 진득함이 손에 묻었다. s는 조심조심 알이 여문 다섯개를 오른손으로 주워 왼손바닥에 올렸다. 후 살짝 불어 흙을 대충 날려내고 청바지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약간 건조된 열매는 문드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