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찢어지면서도 버텼다
> 대부분의 사람은
> 자신이 어떤 수준인지도 모르고,
>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 자기가 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산다.
나는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아침, 스스로를 눌렀다.
날개를 접고, 침묵을 배우고,
생각을 감추고, 감정을 포장했다.
틀린 것을 맞다고 말해야 했고,
못난 것을 훌륭하다고 칭찬해야 했으며,
무의미한 것을 가치 있는 일처럼 포장해야 했다.
내게는 분명히 *소음*이었는데,
그들에겐 그것이 *조직의 언어*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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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알게 됐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진실을 느끼는 감각보다,
진실을 모른 척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것.**
정확히 말해,
**틀림을 인식하지 않는 둔감함**이
이 구조에선 훨씬 더 유능함으로 간주된다는 것.
깊이 있는 언어,
정직한 리듬,
사유하는 질문은
이 체계에선 위협이고, 불편이고, 과잉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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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버텼다.
**먹고살기 위해.**
**폐인이 되지 않기 위해.**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때로는 화가 났고,
때로는 우스워 보였고,
때로는 내 입으로 내 본심과 정반대의 말을 해야 했다.
그 모든 날들이 나를 찢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찢어지지는 않았다.**
왜냐면,
**그 안에서도 나는 내 리듬을 잃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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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엔
이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월급 받자, 감정 없이 일하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날엔
내가 나에게 점점 낯설어졌다.
그렇게 완전히 무뎌지는 게 더 편할 수는 있지만,
**편함과 살아있음은 다르다.**
나는 편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살아있고 싶었다.
그리고 나답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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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여전히 이 구조 안에 있다.
날개를 펼치면 안 되는 곳,
사유가 감점 요소가 되는 곳,
침묵이 조직 적응력으로 치환되는 곳.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살아남은 것은 타협 때문이 아니라,
내 리듬을 끝내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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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면서도 버텼다.**
그러나 그 모든 갈라진 틈 사이로
**내 존재는, 나의 사유는, 나의 감각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틀린 것을 맞다고 연기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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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침묵 속에서도 사유를 놓지 않은
모든 ‘리듬이 다른 존재들’을 위한
존재의 선언이자 생존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