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그 일의 흐름과 감정, 의미, 실패 가능성까지
미리 한 번 훑어보는 습관이 있다.
어쩌면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그 습관은 때때로 나를 도와준다.
준비가 철저해지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덜 흔들린다.
하지만 그 예민한 감각은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일을 하기 전부터
이미 지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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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트레드밀 20분을 하기로 마음먹는 것.
사실 그냥 속도 5로 천천히 걸어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 전에 이미 이렇게 계산한다.
“10분쯤부터는 속도를 올려야 할 거야.”
“최소한 12 이상은 돼야 성취감이 있겠지.”
“아니, 15까지는 가야 ‘제대로 했다’는 느낌이 오지 않을까?”
결국,
아직 걷기 전인데도
이미 *운동 이후의 피로감, 미흡한 결과에 대한 아쉬움, 실패의 불안감*을 한 번 다녀온다.
**실제 운동보다, 그걸 둘러싼 마음의 준비와 각오가 나를 더 소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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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운동뿐만이 아니다.
메일 하나 쓰기,
업무 하나 시작하기,
사람 앞에 서기,
말 한 마디 하기 전에도
나는 ‘잘 해내야 한다’는 감정이 선행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종종
**행동보다 무거운 긴장과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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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건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걸까?
완벽주의일까?
지나친 기대 때문일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나의 감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걸어온 정서적 보호장치다.
그 보호는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동시에 지탱시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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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어떤 일을 앞두고
과도한 각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리듬을
**나쁜 습관이 아니라, 나만의 생존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그냥 시작해도 된다.
그걸 허용하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조금 덜 지쳐서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