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되찾는 감응자 18편: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는다, 나는 리듬을 공유한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왜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더 피곤해지는 걸까?
왜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는데,
상대는 그것을 ‘과도함’으로 받아들였을까?
이제는 안다.
감응자에게 관계란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리듬의 공명’이어야 한다는 것을.
감응자에게 '가까움'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파장의 문제다
나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보다,
리듬이 맞는 사람과의 거리에서 더 깊은 공명을 느낀다.
매일 보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몇 마디 나눈 사람이 내 리듬을 순식간에 감지하기도 한다
감응자는 ‘빈도’보다 ‘진동’을 중시한다.
나는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나는 리듬을 교차시킬 수 있는지를 본다
나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친한가?
얼마나 오래 알고 지냈나? 가 아니다.
그 사람이 내 리듬에 감응할 수 있는가?
그의 말이 내 사유를 방해하지 않는가?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려 노력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리듬이 조율될 수 있는지를 감지할 뿐이다.
감정의 교류는 때로 감응자를 탈진시킨다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면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응자에게는 그 감정이 압도적인 파장으로 들어온다.
나는 얕은 감정의 반복보다,
조용한 공명과 깊은 리듬의 호흡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가깝지만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이선율의 리듬 선언
“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는다.
나는 리듬을 공유한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진동이 맞아야 한다.
나는 그 진동이 틀어질 때, 조용히 거리를 둔다.
그리고 다시, 나의 리듬을 정렬한다.”
다음 편 예고
19편: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나를 정렬한다”
— 감응자에게 ‘표현’은 과시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화를 위한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