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이 정도까지 해야 돼?'
돌이켜보면 그간 나의 패착 중 하나였다. "왜 우리는 당신을 뽑아야하나요?" 같은 질문에 구구절절 읊을 정도의 회사는 대부분 아니었어서, 아님 말고 식으로 고개를 빳빳이 세우곤 했다. 누구는 할머니가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사준 정장이라며 그 의미를 여기서 발휘하겠다고 했고(집가는 지하철에서 티 안 나게 잘한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다른 누구는 이 회사를 위해 SNS 페이지를 운영했다며(다른 어떤 회사 썼냐고 내게 물어봤다) 간절함을 어필했지만, 난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누가 봐도 순 거짓말인데 면접관이 알아봐주지 않을까라며, 나를 안 뽑으면 당신들이 손해일 텐데라며, 고작 지원자 주제에 여유를 부렸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 아마도 저 사람들이 붙었을 가능성이 크다.
달포 전쯤이었다. 간만에 집에서 먹은 저녁 메뉴는 눈칫밥이었고, 멘토링 수업료를 보내라는 카톡이 왔는데 이 기세라면 곧 보릿고개 신세였다. 경제난은 일단 백수부터 탈출하고 보자는 조급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부랴부랴 채용정보방을 뒤져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등기를 보냈다. 그리고 메이저 언론사 공채 필기를 망치고 나온 후 핸드폰을 켜니, 서류 합격 문자가 와있었다.
문제는 시험 및 면접이 이틀 뒤이고, 근무지는 지방이라는 점. 곧바로 만날 여자친구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맨날 맨날 보고 싶은데.
이 사실을 털어놓으니 바로 서운한 표정으로, "붙으면 갈 꺼야?"라는 물음이 돌아왔다. 이어 장황하게 시험을 보는 것도 경험이지 않을까라며 말을 이어갔지만, 표정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연봉정보 사이트를 찾아봤다. 초봉이 상당했다. 이를 본 여자친구는 반색하며 바로 나를 울산으로 보낼 기세였다. 그렇게 난생 처음 울산을 찾았다.
시험장에 도착했을 때 나의 습관은 다른 지원자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사람 보는 눈을 갖췄다는 오만한 전제 하에, 다른 사람들의 관상을 어림짐작하여 나의 합불 가능성을 따지는 더 오만한 루틴이었다. 첫차를 타고 내려온 탓에 제일 먼저 책상에 앉았고, 하나둘 들어오는 지원자들을 정리노트보다 더 열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나온 답은 "해볼 만하다"였다.
내 눈에는 다들 어수룩해보거나, 노쇠한 티가 역력했다. 다만 입실 시간이 다가오자 속속 들어오는 사람들이 얄미워졌다. 그래도 전국 단위에서 최종 2번이나 간 나만큼의 내공을 지닌 사람은 없어보였고, 의자에 등을 기대 스트레칭을 하며 이 자리는 내 것임을 선전포고했다. 물론 아무도 안쳐다 봐줬지만. 무난하게 필기를 쳤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하루 종일 우리를 지켜본 후, 엄선해서 한 명만 뽑겠다는 것. 인솔자는 식사라는 단어 다음에 '면접'이란 말을 스스럼없이 붙였다. 하긴 시험보기 전부터 5~6년 만에 신입을 뽑는 것이 설렜는지, 선배들이 우르르 내려와 수험생들 얼굴을 훑어보고, 어디서 시험 보러 왔는지, 울산이면 어느 고등학교를 왔는지 호구조사가 한바탕 벌어졌었다.
긴장한 마음으로 숯불고기집에 들어가니 별채에 이미 부서 식구들이 앉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여긴 우리 자리가 아니다 싶어 지원자들이 대거 한 쪽으로 몰려 앉았다. 한 눈에 봐도 높아 보이시는 분이 너넨 저기에 가서 앉으라며, 지원자 셋당 부서 직원 1명의 황금비율이 맞춰졌다.
하루 종일 지원자를 안내하는 인솔자가 바로 내 앞에 앉았고, 무조건 여기서 잘해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태연한 척 인원수에 맞게 물을 따르고, 인솔자의 수습시절 무용담을 맞장구쳐줬지만, 손과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숯불고기집이었지만, 메뉴는 사골우거지국이었다. 밥을 사주는 게 어디고. 바로 앞에 선배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연히 맛있게 먹을 수는 있다. 문제는 국이라는 점. 혹시나 국물이 튀면 힘들게 다림질하며 준비한 게 헛수고가 될 판이었다. 더구나 식사 후엔 카메라테스트 겸 면접이 있다. 안 그래도 서른을 코앞에 두고도 음식을 매번 흘려, 옷도 음식을 먹는다는 잔소리를 듣는 지라 조치가 시급했다.
레이더를 켰고, 벽 쪽 옷걸이에 걸려있는 앞치마를 찾아냈다. 사실 앞치마를 찾는 건 여자친구와 밥을 먹을 때마다의 습관이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아무튼 국장이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옷걸이로 달려가며 "앞치마 필요한 분~"을 외쳤다. 혼자만 잇속을 챙기는 옹졸한 사람이 되기 싫었고, 그 전에 대각선에 앉은 여자가 흰색 블라우스만 입은 것이 눈에 보인 탓이었다. 비슷한 차림의 지원자들이 대거 손을 들었고, 앞치마를 나눠주는 나를 올려다보는 표정을 보니 나를 구세주로 여기는 듯했다.
이를 본 딱 봐도 실력자인 중년 남성이 내게 여자친구 있냐고 물었다. 여자친구 자랑을 한바탕 늘여놓고 싶었지만, 그 순간 낙오가 될 것임을 알기에, 수줍은 척 '네'라고 하고 미소만 보였다. 이런 자리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큰 어드밴티지이기에, 사골우거지국이 숯불고기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이름이 뭐고?"
방금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었던 그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와중에 내 이름을 물었다. 점수를 땄구나 싶었다. 침착하게 내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다음 질문은 "여자친구랑 얼마나 사겼노?"였다. 나를 점지했다는 확신이 더욱 솟구쳤다.
순간 학습한 기보를 되새김질하며 최적의 수를 찾는 알파고처럼, 최적의 답을 찾기 위해 순간 뇌를 최대한 가동했다.
그리고 역시 지역으로 취업한 선배가 떠올랐다. 그 곳과는 전혀 연고가 없지만, 여자친구와는 결혼을 생각하는 관계이며, 00동을 읊으며 거기서 집을 구하려한다고 최종면접에서 말했다는 게 생각났다. 물론 그는 여전히 상경을 꿈꾸고 있다.
이쪽 세계는 붙은 사람이 곧 정답이다. 나도 그처럼 대답하며, 절대 이 회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진심을 전달해야했다. 수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한 2년 정도 됐습니다"고 대답했다. 사실 사귄지 94일째 되던 날이었다.
면접장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그가 면접관석에 앉아있었다. 사실 저 이후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보고, 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를 그대로 읊어댔고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었다. 이미 점수를 따놨다는 자만은 오히려 독이 됐다. 의례적으로 늘 시작하는 1분 자기소개부터 갑자기 버벅였고, 이에 말린 탓인지 무슨 말을 해도 횡설수설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흡족해하던 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생방송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미리 연습 좀 했어야하는 말을 건넬 정도였다.
무엇보다 한심했던 건 울산에 연고가 없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네"라고 해버린 것이다. 붙고 싶어서 여자친구랑 2년 됐다고 한 놈이, 그 땐 왜 거짓말을 하기 싫었는지 저렇게 끝내버린 것일까. 여자친구 집이 울산이라고 둘러대던가 아니면 덧붙이면서 울산에 정착할 생각이라고 애절하게 말이라도 하던가. 그렇게 점수를 만회해도 모자랄 판에, 딱 한 음절만 내 입에서 나왔고, 일말의 여지는 그렇게 증발해버렸다.
다음 날 오전 불합격 문자가 왔고, 여전히 나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방황하고 있다. 수입이 없으니 잔고는 자꾸만 바닥을 향하고,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제약이 생기는 것이 너무 힘들다.
울산 내려가기 전날, 카페에서 여자친구는 장식용 꽃을 보며 이쁘다고 했었다. 내심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슬쩍 가격표를 보고 난 후 돈 벌면 그 때 꼭 사주겠다는 소리를 해야만 했다. 내가 받는 사랑만큼 주기 위해서는 거짓말 얼마든 할 수 있다. 더 겸손해져야지.
*헤어진지 어느 덧 2년. 찌질하지만 그조차도 기억이라 우기며 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