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30-고슴도치

간만에 달린 댓글 하나

by 송사리
ad36_77_i1.jpg?type=w431_fst_n&wm=Y 충처=네이버 지식백과

팔은 안으로 굽는다.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나와 관계된 사람, 지역 등이 등장하면 좀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때는 2023년의 어느 새벽. 역시나 발제거리가 없어 공공기관 홈페이지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유레카. 등대 전통시장 선정 결과 공고 게시물을 보고 작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느 누구도 기사화한 적 없는, 그야말로 나한테 딱 필요한 '먹거리'이기 때문. 오늘은 너로 하루를 막겠다!


더욱 반가웠던 것은 당시 살고 있는 동네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사실. 말 그대로 집 앞이라 야식이 땡길 때면 무조건 들리는 필수코스다. 전통시장 치고는 현대화도 잘 되어있고, 배송 서비스도 펼치는 등 나름 트렌드에 발맞추려 노력하는 곳이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정부 사업에 선정되다니. 이건 널리널리 알려야 한다.


고로 누구보다 정성을 다해 기사를 작성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진짜 구청, 시장 상인회, 정부 부처, 서울시청 등 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은 다했다. 등대 전통시장이 무엇인지 독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사업을 담당하는 사무관조차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만 반복.


등대 전통시장은 딱 보면 알다시피 등대공장에서 이름을 따왔다. 바다에 '등대'가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듯,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명명(命名)했음이 분명하다. 다만 구체적인 사업은 보통 수행기관을 선정하면서 좀 더 명확해진다. 대략적인 느낌적인 느낌을 토대로 공고를 냈을 뿐, 아직 수행기관 선정 전이라 어느 누구도 확실하게 답을 못한 것이다. 그렇게 고생에 비해 아쉬움 가득한 채로 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런데 댓글이 달렸다. " 시장을 이용하는 시민으로 등대전통 시장으로 선정되었다고 하여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내가 이용하는 시장이 이런 좋은 기사에 오르니 자긍심이 생깁니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분야를 취재하다 보니 댓글은커녕 좋아요도 안 달릴 때가 많은데, 이게 웬일인가. 찬찬히 댓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익숙한 닉네임. 엄마였다. 2000년대 초반 엄마 이메일 주소를 내가 만들어줬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간만에 달린 댓글의 작성자가 엄마라니. 얼굴이 후끈거렸다. 비유하자면, 반장선거에서 한 표가 나온 느낌이 아닌가. 이런 기사는 댓글을 안 달아주는 게 도움이 되는 데 말이지.


희망이 없던 언론사 취업준비생 시절에는 매일매일 기록을 측정하는 운동선수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지 않는가. 예를 들어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12초가 나왔다면, 성적 개선책인 단순 명료하다. 더 '졸라' 빨리 달리면 된다.


하지만 취준생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뭐가 부족한지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같은 작문 글이어도 어느 언론사에서는 합격이 되고, 어떤 언론사에서는 불합격이 된다. 무엇보다도 언제 '대회'가 열리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니 나태해지기 딱 좋았다. 지금 나의 기록을 측정해주는 조력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참 많이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신문사 직원이 됐다. 역시 내 매는 내가 번다. 매일매일 달리기 대회를 치르는 기분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매일매일 새로운 기사 아이템을 발제해야 한다. 정말 어느 누구도 쓰지 않은 기사를 찾아내는 것도 나는 너무 힘든데, 데스크들은 "기사가 없다"는 말을 매일 아침 인사로 건넨다. 네? 저 기사 발제 했는데요? '큰 거' 안 쓰면 일 안 한 놈이 된다.


그리고 나의 달리기 실력을 매일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 사실 그게 제일 무섭다. 내 이름 달고 나가는 기사를 가족이 매일 지켜보고 있다는 것. 하루정도 휴가를 쓰고 기사를 안 올리면, 무슨 일 있었냐고 바로 카톡이 온다. 후.


무슨 일 있다고 엄마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엄마가 먼저 담당이 바뀌었냐고 물어봤다. 맨날 중소벤처기업부 기사를 쓰던 아들이 갑자기 제약, 병원 이런 기사를 쓰니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됐다고 둘러댔다. 멀쩡하게 잘 하고 있던 일을 회사가 T/O를 줄이는 바람에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힘들어도 안 힘든 척 해야지.


그게 서글퍼졌다. 회사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데, 그 마저도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는 게. 왜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엄마한테 싫은 소리 안 들으려고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한 달 전 세운 나의 올해 목표는 재밌게 살기, 그리고 멋있어 지기였다. 남들보다 늦게 들어온 나의 회사. 회사는 매일 신문 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저연차를 몰아세우고 채찍질하기 바빴고, 그 질서에 누구보다 충성을 다하다 보니 나의 소중한 30대 전반부가 지나있었다. 그 사이 몸은 상했고, 장기연애에서 이별했고, 돈은 하나도 모으지 못했다.


무엇보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이야기만 하는 매력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만큼 하고, 이제는 내 자체가 멋있는 사람이 되자. 스스로에게 신신당부했다.


허나 납득할 수 없는 인사 이후, 회사만 원망하다가 벌써 한 달이 흘렀다. 이렇게 11번 더 흐르면 나이 한살 또 먹는다. 왜 나는 이 소중한 시간을 회사를 원망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보내야 하는 걸까.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고, 편 들어주는 이 없이 혼자 속만 끙끙 앓으면서 보내고 있다. 대체 왜? 내 인생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연휴가 끝나간다. 회사는 한 달을 새로운 출입처 적응기간이라 생각하고, 이제는 더 매섭게 채찍질을 할 테다. 허나 순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여전히 그냥 도망가고 싶다.


역시나 밟히는 것은 엄마. 우여곡절을 지나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를 쓴다는 사실은, 엄마의 자부심이 됐다. 그런 엄마에게 지금 상황도 설명 못하는데,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고민만 깊어간다. 회사도 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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