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9-가족사진

by 송사리

언제였는지도 모를 까마득한 때의 이야기다. 명절이라 외갓집 식구들이 인천 부평 외할아버지 댁으로 모였다. 그중 어느 하루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 아빠, 이모와 이모부, 외삼촌 등 집안의 모든 어른들이 사라졌다.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지하철을 혼자 못 탈까봐 어떻게든 마중을 나오는 외갓집 식구들인데, 초등학생인 누나 밑으로 장난꾸러기 사촌형제들을 두고 집밖을 나가다니.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다음 외갓집을 들렀을 때 어른들의 단체 사진이 벽에 걸린 것을 보고서야, 사진관에 다녀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 가족사진의 의미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사진과 함께 벽에 걸려있던 할아버지 독사진이 장례식장 한복판에 자리 잡은 것을 보고서다. 아니 그때도 몰랐다. TV와 영화에서 집안 어른께 영정사진을 찍자는 얘기를 하긴 그러니, 가족사진 찍으러 가자는 말로 에둘러 한다는 것을 접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common?quality=75&direct=true&src=https%3A%2F%2Fmovie-phinf.pstatic.net%2F20131118_261%2F1384751156545hEPKl_JPEG%2Fmovie_image.jpg 출처=네이버 영화

지난달에 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영정사진이 예쁘게 찍히고 싶어서 다시 사진관을 찾은 할머니 씬을 보며 가슴이 짠해졌다. 죽음을 대비하자는 말을 못해 배배 돌려 말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 말의 뜻을 알면서 모른 체하는 할머니의 심정은 어떨까 짐작을 해보면서.


이제 갓 자식 둘 모두 대학에 보내 여유가 생긴 아빠의 나이 마흔여덟. 아직 죽음이란 단어와는 멀 때. 당연히 영정사진 같은 건 준비할 리가 없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파르게 메말라간 6개월 동안, 그런 사진을 찍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진짜 생사를 오고가는 사람 앞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실례였다. 그렇게 혹시 모를 희망의 지푸라기만 붙잡고 시간을 보냈다.


2011년 3월 30일, 그 희망의 싹 마저 잘리고 말았다. 아빠는 의식을 잃었고 산소호흡기 하나에 의존에 그야말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이젠 정말 끝이라는 직감이 가족 모두에게 들기 시작했다. 전주 친가 식구들도 올라왔고, 외가 식구들도 하나둘 모여들었다. 밤중에는 외할머니가 다니는 교회 분들이 오셨다. 임종 예배를 하기 위함이었다. 아직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 앞에서 임종 예배라니. 나는 입이 삐죽 튀어나오고 말았다. 상주될 사람도 모르게 우후죽순 일들이 진행되는 게 탐탁치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었을 때에는 둘째 이모부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이모부 오른손에는 종이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뭔고 하니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담아온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영정사진이라고는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무뚝뚝하고 성질 급한 아빠인지라 마땅한 독사진도 없었다. 고르고 골라 이모부가 인화한 사진은 전년도 일본 가족여행에서 아빠가 바다를 배경으로 두고 찍은 것이었다. 에메랄드빛 카라티를 입고 다리를 괸 채 미소를 짓는 사진. 도무지 장례식의 엄중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미리 서울에 와서 아빠를 보살피던 막내 고모가 사진을 꺼냈다. 표면의 아빠를 손으로 매만지며 잘 나왔다고 말하다가, 결국 액자를 붙잡고 펑펑 우시고 말았다. 멀쩡히 살아있는 동생을 두고 죽음을 준비하는 건 나이 많은 고모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가족 모두가 착잡했다. 그렇게 다들 사진을 돌아가면서 보며 얼마 안 남은 아빠와의 작별을 준비했다. 벌서 8년도 전의 일이구나.


0004194164_001_20190818165304733.jpg?type=w647 예능은 예능으로만.

지난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부모님 댁을 방문하는 내용을 다뤘다. 원 지사의 부모는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서귀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었다. 아들인 원 지사는 일이 바쁘다보니 같은 제주도에 있음에도 두세 달 만에 부모님 댁을 방문한 것이었다. 아무리 50대 중반이고, 제주도지사지만 아들은 아들. 뭐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 아들을 먹였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 보좌관들은 원 지사의 부모에게 아들 보러 도청에 오질 않느냐고 물었다. 부모는 그러다간 큰일 난다며 손사래를 연거푸 쳤다. 이미 아들은 자신만의 아들이 아니며, 보고 싶지만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도청 인근에 와도 그냥 지나친다고 했다. 그렇게 만남이 하루 이틀 밀리다보니 뜸해지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보좌관은 돌아가기 전에 원 지사와 부모의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들었다.


그때 저 가족사진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았다. 세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마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 더 잘 챙겨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사진으로 달래는 저 상황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괜히 또 가슴이 찡했다. 나는 그런 사진도 남기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했으니깐.


집에 네 가족이 찍은 사진 하나가 걸려 있긴 하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 전에 미리 교복을 입고 증명사진을 찍으면서, 가족사진을 같이 찍었다. 벌써 13년이나 된 사진이다. 나는 나대로 서울에서 3년을 잘 버티면 술술 풀리는 삶을 꿈꿨을 것이고, 고2였던 누나는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결국 자식들 잘 키우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었을 테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뿔뿔이 흩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학창시절이라 바빠 가족들이 어디 다니지도 못했고, 어쩌다 찍었어도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어디 올리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무리 찾고 복원하려 해도 쉽지가 않다. 더 많이 찍어두고 남겨둘 껄. 후회가 막심하다.


딱히 집안에 큰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끼다보니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금방 떠나는 건 아닐까 종종 걱정을 한다.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내가 더 잘 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추석에 내려오느냐는 큰 아빠의 물음에 허허 웃으며 에둘러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어린이집에서 시달리고 퇴근해 누워있는 엄마를 뒤로 하고 방으로만 들어간다. 각종 가족행사는 불참한지 오래. 제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데 왜 내 맘대로 되지를 않을까. 책임감을 느끼고 싶어 글을 썼다. 글이 형편없게 써지는 것을 보니 책임감을 좀 많이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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