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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빠에 그 아들

by 송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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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번" 아빠는 단호했다. 엄마, 누나의 원망 섞인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막내인 내가 눈치를 살펴 채널을 돌리면 바둑TV가 나왔다. 온 가족이 모인 저녁식사의 풍경이었다. 바둑이라곤 흑돌, 백돌 구분하는 게 전부인 나는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루이나이웨이 등 국수들의 이름을 절로 외울 경지가 됐다. TV가 하나 뿐인 집에 왜 혼자만 보고 싶은 것을 볼까. 중학생의 나는 아빠가 많이도 미웠다.


그런 아빠가 변하기 시작했다. 바둑TV 대신 토마토TV, 한국경제TV를 번갈아 틀 때가 더 많아졌다. 화면 하단에는 종목과 주가가 왼쪽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전문가란 사람들은 차트를 그려가며 종목 진단을 늘어놓았다. 삼성전기, 한솔제지 등을 언급할 때면 아빠는 안경을 고쳐 잡고 고개를 TV 가까이로 가져갔다. 한 눈에 봐도 아빠가 사들인 종목들이었다.


웬걸. 시간이 흘러도 파란색 글씨와 아래로 향한 삼각형은 바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물타기’는 계속 됐고,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며 주식 시장이 폭락하고서야 아빠는 이성을 되찾았다. 당시 주식에 함부로 손대 낭패를 본 집이 우리 가족만이 아니란 사실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이 일이 심각하게 다가온 건 2년이 지나 아빠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였다. 서울아산병원은 6인실에서 사나흘 머물면 무조건 2인실 이상으로 병실을 옮겨야만 했다. 덕분에 입원료와 치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중간정산을 마치고 나서는 우리 집의 가용 자산을 체크해야 했다.


동부생명에서 지급한 보험금, 2006년형 쏘렌토, 최후의 보루인 태백의 임대 아파트까지. 그러나 계산이 마무리 되질 않았다. 아빠가 주식으로 얼마나 까먹었는지가 변수였다. 결국 내가 말을 꺼내야 했다.


“아빠랑 엄마가 이제 소득이 없는데 병원비는 계속 나가잖아. 그래서 집에 돈이 얼마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아껴야지”


아들의 의도를 간파한 아빠는 말을 끊으며 답했다. 허나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아니 그게 의도였을지 모른다. 결국 엄마가 나서 질문을 다시 던졌다.


“여보 주식에 넣어둔 돈이 얼마나 되는데?”

“좀 돼..”


엄마는 연거푸 물었으나 아빠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오히려 언성이 높아진 사람은 아빠였다. 아빠의 짜증을 감지한 엄마는 결국 질문을 멈춰야 했다. 갑작스러운 생사의 경계에 이미 혼란스러운 당신이었다. 더 스트레스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끝내 아빠는 한 줌의 재가 될 때까지 주식에 투자한 액수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상을 치르고 시간이 꽤 흐르고서야 그 액수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아빠 명의의 유진투자증권의 계좌를 해지한 덕분이다. ‘0’ 하나가 사라졌고, 거기에 몇 토막이 났다. 아니 도대체 토마토TV에서 뭘 보신 걸까.


다만 원망은 잠깐이었다. 남겨둔 처자식들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도 없어, 그저 끙끙 앓았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면서다. 어차피 만질 수 없는 돈이었다고 생각하고, 세 식구가 서울로 올라와 아등바등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글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은 요즘이다. 방에만 쳐박혀있다가 거실로 나오면 엄마는 아들에게 묻는다. 저번에 시험 본 것 어떻게 됐냐고, 발표난 곳은 있냐고 등등. 면전에서 떨어졌다는 말하기가 싫어 입으로 웅얼웅얼 다시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만다.


어쩌다 한 잔 하고온 엄마가 "어디든 들어가야지"라며 취중진담을 늘어놓을 때는 더더욱 내가 초라해진다. 왜 내 꿈을 운운하며 가족들을 힘들게 한 걸까. 괜한 후회에 한숨만 내쉰다.


노트북의 자기소개서 폴더를 열어봤다. 세어보니 150개가 넘는 지원서를 썼다. 그런데 나를 받아준 곳이 없었다. 원하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로또 당첨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나날들. 언젠가는 나도 웃을 수 있을까. 당당해질 수 있을까. 미천한 내 노력에 비해 요행만 바라는 것 같아 답답한 5월의 밤이다.


*취업준비생 시절 썼던 작문 연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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