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하는 고민들.
"잠깐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 주저앉긴 너무나도 싫어"
-육지담 <On&On>-
그럼에도 주저앉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2019년 11월 7일, 일찍 일어나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이촌역으로 향했다. 역사 공부에 빠진 당시 여자친구가 박물관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부터 조선 전기 원각사지 10층 석탑까지 반만년, 아니 그 이상 인류 흔적이 담긴 유물을 보고 있는데 도통 집중이 되질 않았다.
전날 있었던 기획미션이 자꾸 떠오른 탓이었다. 방심했는지 또 어처구니없이 저지른 실수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빠르면 이날 발표가 난다고 했다. 내 꿈과 앞날이 문자 한 통에 달리다니. 가혹한 처사였다. 그래서 유적을 본다고 보는데, 보는 게 아니었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조선 후기관'에 다다랐을 즈음, 핸드폰 진동이 짧게 두 번 울렸다. 문자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였다. 생각보다 이른 발표. 그것도 하필 데이트 도중에. 여자친구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제한된 인원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재작년에 접한 문구가 그대로 있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데이트는 성급히 끝났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모양 빠지기 싫어서.
충격은 컸다. 어떻게 똑같은 회사에 3년 연속으로 면접 보는데 한 번을 안 붙여주냐. 내 상품 가치는 떨이보다 못해 이제 영영 끝인가 싶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또다시 돈 걱정에 허덕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하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런 꼴을 보인다니, 일어설 힘이 나질 않았다.
"송사리씨 잘 지내요~??"
그렇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을 때, 카톡이 하나 왔다. 낯선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한참 떠올리다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세달 전쯤 보험사 어플 체험 알바에서 만난 부지점장이었다. 5만원만 받고 나오려다가, 사내 벤처까지 이끄는 부지점장이 신기해 한 번 더 만나 커피를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러고 끝난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안부를 묻는 딱 한 줄이었지만 의도는 명확해보였다. 내게 재무설계사 제안을 하겠다는 것. 말이 제안이지, 이쪽 업계 구인 이야기는 종종 접하지 않나.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텐데 이날은 좀 달랐다. 꿈이 또 무너져 상실감에 빠져있는데 찾아온 연락이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혹시 내게 어떠한 신호가 아닐까. 어차피 돈도 없는데 교육만이라도 입과할까. 한 달만 다녀도 200만원 가까이 준다는데. 그런 생각이 맴돌아 앓는 소리를 더한 답장을 보냈다. 바로 다음날 커피 마시러 오라는 답장이 왔다.
나보다 8살 많은 부지점장은 뭔가 나와는 대조적인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면서부터 자기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대기업 생활이 나쁘진 않았지만 뭔가 이대로는 미래가 불안하다 싶어, 회사를 다니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단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고 재무설계사에 뛰어들었다고 말을 이었다. 또 그걸로도 모자라 사내 벤처까지 만들어서 앱을 만들었다고 살아온 여정을 소개한 바 있다. 그 사람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라는 게 있지 않은가. 대기업을 다녔다가 그만두고, 또 회사를 다니며 자기 사업까지 챙기는 데에서 분명 범인은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그런 그에게도 단점은 있었다. 바로 아쉬운 소리를 못한다는 것. 누가 봐도 재무설계사의 길을 제안하려고 부른 게 티가 나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 등 겉으로 맴도는 얘기만 반복했다.
하도 답답해 내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내일 모레 서른인데 되는 건 없고 미래도 없어서 고민이라고. 그제야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는 "이 일 어때? 좋아"라는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대화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언론사 입사가 꿈이라면, 자기와 함께 하며 꿈을 키우는 게 어떠냐고. 재테크와 관련된 정보를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찍으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것. 자기 아는 설계사 중엔 블로그에 유용한 정보를 올려 인기를 끌고 책까지 낸 사람도 있다며, 검색해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우리 지점에서 확 도와줄 테니 한 번 해보자"는 말을 꺼냈다.
도무지 진전이 없어 막막하던 대화가 너무 진전이 생겨 문제였다. 어떤 과정을 가쳐 입사를 하게 되고 '억대 연봉'으로 거듭나는지 들으려고 온 건데, 다짜고짜 나만 믿고 따라오라니. 이건 뭐 어둠의 세계도 아니고.
갑자기 "아!"라고 탄식을 뱉더니 대뜸 내게 시간이 더 있냐고 물었다. 지점장님을 만나보고 가라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 존경하는 분인데, 정부에서 하는 사업에 금융 멘토로도 활동하시니 좋은 얘기를 들을 거라고 했다. 나는 또 거절을 못하고 그를 따라가 '반포지점'에 입성하고 말았다.
지점장을 보자마자 나와 닮은 구석이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입만 살았다는 점.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름, 나이, 주소, 가족관계 등 신상을 묻더니, 내게 "왜 이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응? 나 당신 직원이 제안해서 온 건데요? 내가 받은 당황스러움을 고스란히 되갚고 싶어졌다. 퉁명스럽게 "진입장벽이 낮아보여서요"라 대답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지 않나. 인스타그램에서 FC 모집 공고를 보면 '체대 출신, 군 전역자 출신'이라 적혀있고, 내가 아는 금융권 종사자 중 이토록 비전공자가 많은 분야는 없었다.
내가 잽으로 받아치자 부산 출신의 지점장은 "그래, 그렇게 볼 수 있지"라며 살짝 상기된 기색을 보였다. 이어 "하지만 이거 아무나 버틸 수 있는 직업은 아니야"라며 응수했다. 그리고 모두가 선망하는 외국계 전자회사를 다니다가 한계를 느끼고, 홀몸으로 서울에 올라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서 점장의 자리에 오른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토씨 하나도 안 틀리는 게 여기저기 써먹는 레퍼토리 같았다. 하긴 재무설계사를 소개하는 피피티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말 다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의 일자리는 더욱 없어질 것이고, 결국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보험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조악한 논리의 설명을 마친 후 지점장은 진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룹 차원에서 11월 입사자까지 특별 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니 들어와서 함께하자고. 한 달에 두 명씩만 모아도 중견기업 수준 연봉이 보장된다고 했다. 그건 나를 소개한 부지점장만 잘 따르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혹시 모를 걱정까지 잠재웠다.
"니 친구들은 연봉 어떻게 되나?" 지점장이 물었다. 이 정도면 처우가 상당함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테다. 그런데 오기가 발동했다.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그것보다 더 번다고 답했다. 사실이기도 했고. 지점장은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한 번했다.
허나 지점장은 역시 지점장이었다. 지금도 받아주는 곳 없는데, 어디를 들어가서 이 정도 벌어볼 수 있겠냐고 역공했다. 정곡을 너무 정교하게 그리고 깊숙이 찔러 흰 수건을 던질 뻔했다. 고로 우리와 함께 하자는 말로 마무리하며 회의장 밖을 나섰다. 곧바로 나를 끌고 온 부지점장이 들어왔다.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날 안 내보낼 심산인 듯했다.
"이 일 좋다. 내랑 하자"
역시나 무뚝뚝하게 짧은 단어로 부지점장은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여기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봤다. 물론 "좆됐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에둘러 내게 이 문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므로, 더구나 몇 년을 매달린 언론사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출구를 모색했다.
"야, 네 꿈을 왜 포기하나? 그런 생각하지 마라"
부지점장은 정색하며 내게 일갈을 던졌다. 왜 꿈을 포기한다 생각하냐고. 자신도 자신만의 꿈이 있고 재무설계사 일을 하면서 키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재테크 관련 영상을 찍으며 포트폴리오를 쌓으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인생 선배로서 진지하게 하는 조언임이 분명했다. 그 말이 너무 멋있어서 곧바로 근로계약서를 쓸 뻔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겨우겨우 주말 동안 생각해보겠다고 약속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당연하게도 내가 재무설계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월요일날 부지점장의 카톡과 전화를 모조리 씹어버렸더니 더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글쎄, 설사 만약에 재무설계사가 됐으면 내 삶은 어떻게 풀렸을까. 누나가 결혼 준비를 하며 여기저기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거 아니더라도 나를 소개해야할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때마다 서른이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직'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으니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까지 이 공부를 할 거냐는 구박 아닌 구박도 듣게 되고. 그 부지점장의 제안에 응했으면 지금 내 처지보단 나아지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든다.
고난한 시기를 보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봄은 왔지만 채용 한파는 풀리지 않은 탓에, 올곧은 정신을 유지하기가 가장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할까 말까란 고민이 든다. 그러다 문득 저 부지점장 말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어떤 길을 택하고 어떤 삶을 살더라도 꿈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그 꿈이란 걸 언론사라는 피상으로 국한시켜서 요즘 내가 더더욱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에 대한 고민이 다시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