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5-박화영

엄마도 엄마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by 송사리

(꼴랑 몇 년 안 했지만)기자 생활하면서 종종 쓰는 은어로 '총 맞았다'가 있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생겨서 아침부터 준비 안 된 채로 뻗치기를 하거나 어떻게든 주요 기사를 써야할 때를 말한다. 물론 모든 돌발 상황에 총 맞았다는 표현을 쓰진 않는다. 다들 이름 걸고 하는 일이니, 빅테크 기업 대표가 한국을 오면 시키지 않아도 기자들은 공항을 찾는다.


정말 말 그대로 준비 안 된 상황에, 이걸 이 정도로 해야 할 일인가 싶을 때, 근데 시켰으니까 해야할 때 총 맞았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예를 들면 (모두가 발제를 했음에도) 1면 톱이 마땅치 않아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기획성 기사를 갑자기 떠안았을 때. 마감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아침부터 백방으로 뛰어봤자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말 그대로 총 맞았다.


놓치지 않아야 할 게 또 있다. 총구는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는 것. 힘들게 하루 지면을 막고 나면, 이게 이렇게까지 진을 뺄 일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실제로도 그렇다. 위에서 충분히 커트할 수 있는 일임이에도, 여기는 수직적인 곳. 아침 간부회의 예기치 못한 흐름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부서장은 부서원에게 전화를 건다.


"송사리야 이번에 좀만 고생하자"


임무를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직감부터 든다.


두 달 전 일어난 인사명령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않았다. 왜 하필 나일까. 2년 동안 담당 분야에서 잘은 아니더라도 정말 열심히 했고, 그 열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인정받았는데, 왜 나만 콕 찝어서 전혀 관심 없던 영역을 맡긴 것일까. 나가라는 의미인가, 아님 왜 나한테 총을 쏜 것일까.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되물었고, 선배들에게도 물었다. 돌아온 답은 항상 그랬다.


"이게 너한테 기회가 될 수 있지 않겠어?"


가장 최선이면서도, 가장 무책임한 그 말. 더는 하소연한다고 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음을 새삼 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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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엄만데? 그런 거 엄마가 다 알아서 카바치는 거야. 야 XX새끼들아, 니들은 진짜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쓸쓸한 마음으로 찾은 영화 <박화영>. 저렇게 당당하게 말한 박화영은 그대로 바닥에 수구린다. 그리고 여동창들에게 '다굴'을 당한다. 진짜 '존나게' 쳐맞는다.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사는 집을 제공하는 '엄마'는 보통 먹이사슬에 최상단에 위치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양아치 중의 생양아치 영재의 여자친구 은미정이 바람을 폈기 때문. '새끼'가 바람을 폈는데, 엄마가 얻어맞는 것이다.


은미정은 자기 때문에 박화영이 맞는 걸 알면서도 외면한다. 그리고 아쉬울 때마다 박화영에게 엄마라고 부르면서 애교를 부린다. 박화영은 그럴 때마다 못 이기는 척 "니들은 진짜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는 말을 되풀이 한다. 반어적으로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버림을 받는다. 거의 스포한 셈인데?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역시나 박화영이 내 이야기 같아서겠지. 돌아보면 짧은 직장 생활 동안 압박 주는 말을 참 많이 듣고 일했다.


너 지금 열심히 해야 돼, 너가 일하는 하나하나가 쌓여서 너의 평가가 된다 같은 말들. 언제 어디서 어떤 말을 들을 지 몰라서 항상 몸에 힘주고 긴장하면서 살아야 했다. 물론 실제로 사고치는 날도 무진장 많았고.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보니, 다들 아닌 척 나의 행동과 퍼포먼스를 눈여겨봤고, 그 하나하나가 뒤에서는 말을 낳았다.


그 평가가 두려워서 항상 "예 알겠습니다!"란 말을 달고 살았다. 시덥잖은 일에도 항상 군기가 든 것처럼 답을 했고, 군말 없이 따랐다. 여기도 조직이다 보니 사사로운 잡일과 차출될 업무도 많은데, 투덜거릴 시간에 그냥 알겠다고 했다. 내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조직이 원활하게 굴러간다고 하니깐. 사서 고생하면 누군가는 알아줄 테니까.


근데 그게 아니었다. 너무 암말 없이 시키는 것을 다 따랐더니, 나는 그냥 시키면 다하는 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만 부당하다고 생각한 인사가 난 것이겠지. 어차피 문제 삼을 사람은 나밖에 없고, 적당히 구슬리면 탈 없이 조직이 굴러갈 테니까. 실제로도 그렇게 두 달이 흘렀고.


영화 속 박화영은 결국 감옥으로 향한다. 강간을 당했음에도 살인의 누명을 뒤집어썼기 때문. 엄마라는 그 두 글자 때문에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자백했고, 결국 토사구팽 당한다.


당연히 나는 박화영처럼 되긴 싫다. 근데 매일매일 조직 운영을 빌미로 오는 압박들. 어쨌든 신문이 비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들. 점점 내가 그 영화 속 주인공처럼 느껴져서 의욕을 잃게 된다. 벌써부터 지치면 남은 한 해는 어떻게 보내려고.


"엄마한테도 엄마 같은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또 하나 가슴에 와닿았던 대사. 지금의 내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또 생기는 것. 조직 운영 논리로 압박 받고, 싫다는 두 글자도 못 외치는 막내의 맘을 알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같은 엄마가 있어야 딸의 마음을 알 테니까.


근데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면 총 맞았단 얘기가 나오지도 않았겠지? 고개를 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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