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 안 되는 거야
잠시 소개하면, 돈에 보수적이다. 내기를 극도로 싫어한다. 질 가능성이 큰일에 뭐하러 돈을 걸어서 기분 상할 일 만드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주식도 마찬가지. 심지어 또래들 꽤나 해본 로또나 스포츠토토 한번 해본 적 없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 분의 1이란다. 누군가를 벼락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 813만9999명이 희생해야 한다는 소리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할까. 당연히 후자겠지. 그걸 왜 해?
5000원도 맘껏 쓰지 못하는 '쫄보'가 자산형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N번의 직장을 거쳐 만 서른 줄에 들어선 지금도 수습 월급을 받고 있다. 친구들에 비해 5년 정도 사회 생활이 늦어졌다. 부자가 되기 위한 출발 역시 5년 뒤쳐진 셈.
아니 5년이 뭐야. 희한하게도 단톡방에는 변호사, 증권맨, 대기업 직원 등 잘 나가는 친구들만 있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넘쳐나던 지난 2년 사이 주식과 가상화폐로 꽤나 짭짤한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취업문 뚝 끊겨 방황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여기까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해 가정을 꾸린 친구가 지난해 서울 소재 아파트를 자가로 마련했다는 소식은 다르게 느껴졌다. 심지어 화장실이 2개인 아파트. 그것만 해도 배가 아픈데, "이사한 지 한 달만에 한 장이 올랐다"며 단톡방에 껄껄 웃는 것이다.
"한 장이라.. 백?" → "ㄴㄴ"
"그럼 천?" → "ㄴㄴ"
"억" → "ㅇㅇ"
뭐 1억원을 한 달 만에? 그것도 숨만 쉬고?? 나는 평생 일해도 1억은커녕, 일자리나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암담한데???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살면 나는 영영 가난하게 살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그런 나도?'란 생각이 슬슬 스며들었다. 대선을 앞두고 고개를 드는 '000 테마주'를 사면 나도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뒤늦게 자본시장에 기웃거렸다가 피 본 사람을 많이 봤기에 그냥 멈췄다.
근데 로또 한 장 정도는 살 수 있잖아? 월급쟁이로 살면 달라지는 게 없음을, 아무 시도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깟 5000원 잃을 게 두려워서 도전조차 안 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 돈으로 술사먹어서 몸 상하는 게 더 큰 문제인데 말이지.
마침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괜히 망설이고 미루다간 또 한 주가 흐르고, 다시 이도저도 아니게 될 확률이 컸다. 그래, 그냥 질러나 보자.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복권'이라 써진 빨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주가 상승을 나타내는 색깔이라 그런가. 가슴 속에 뭔가가 끓어올랐다. 뭔가 홀린듯, 나도 모르게 복권방을 향해 길을 건너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유리벽에는 3등 당첨 표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안심됐다. 물론 신도림이나 고속터미널에 위치한 '명당' 판매점에 사람들 줄이 늘어선 광경을 본 적 있다. 부랴 이동해 거기서 살까 고민도 잠시 했다. 근데 첫 도전에 1등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빨리 먹으면 체하잖아? 일단 3등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813만9999분의 1 운운하던 놈 맞니?
"자동 하나 주세요"
출입문을 들어서자 주인아주머니는 당장이라도 복권을 줄 기세였다. 마감 직전이었으니까. 보통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당황하며 우왕좌왕하다 허점을 잡힌다. 그렇게 '눈탱이'를 맞은 게 셀 수가 없다. 이번에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복권을 산 적이 없을 뿐, 복권 사는 광경은 더러 봐왔다. 그들이 했던 말을 따라 해봤다. 다행히 주인아주머니는 "이 복권은 어떠냐?"며 '빌드업'을 하지 않고 바로 버튼을 눌러 복권을 발급했다. 너무 고마워서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사는 건데!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 원래 멋모르고 치는 고스톱이 가장 잘 들어맞지 않나. 그럼 내게도 기회가? 자연스레 슬렉스, 재킷, 벨트 등 평소 사야겠다 생각하던 것들이 떠올랐다. 로또 당첨금으로 사면 되니까!
응. 아니야. 돌아가~ 낙첨은 물론이요, 어떻게 맞는 숫자가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로또가 45번까지 있으니, 하나라도 숫자가 맞을 확률이 2/3은 되는 데 말이지. 높은 확률도 비껴가는 나는 정말 안 되는 놈인가. 부정적 사고만 더욱 강해졌다. 일확천금을 향한 나의 도전기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이래. 그래도 매주 몇 명씩 당첨되잖아. 그러니까 그 3%는 정말 큰 거야."
얼마 전 봤던 영화 <연애의 온도>가 떠올랐다. 영(김민희 역)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커플이 계속 만나게 될 확률이 3%'라 며 재결합을 망설일 때 동희(이민기 역)가 말한다. 맞다. 아무리 확률이 낮다고 해도 누군가는 행운을 결험하고 또 행복해진다. 그게 나냐 아니냐가 문제일 뿐. 언젠가 나도 그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내 손에서 떠나간 5000원을 더는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