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죄인인가
요즘 인스타그램 '돋보기'는 사람 감정도 읽나보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이런 '짤'이 뜨더라. 벌써부터 필요가 없어진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이달 초 인사가 났다. 어느 조직이나 흔히 있는 연말연시 통상적인 인적순환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나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정말로 나에게만. 본래 2년 가까이 담당하던 벤처/스타트업 TO(그래봤자 2명이다)가 줄었고, 선택받지 못한 나는 반대급부로 TO가 늘어난 부서로 옮겨졌다. 회사 대다수 사람들은 현상유지.
나가라는 이야기인가. 인사명령 3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가진 생각이다. 우선 2년을 잘했다고는 말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는 했다고 자부한다. 웬만한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한 덕분에 "송사리 기자는 어디에나 있네"라는 소리를 들었고, 연말에는 업계에서 상을 2개나 받았다. 내가 뭐 나만 잘 되려고 시간, 돈 쓰면서 다녔겠나. 조금이라도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다녔지. 그런데 돌아온 것은 TO 축소. 나는 '쌔가 빠지게' 돌아다녔는데, 회사는 필요가 없나보다. 모두 무의미해졌다.
가장 답답한 것은 내가 '중기/벤처 2진'에서 왜 새로운 부서 3진으로 옮겨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질 않는다는 점. 명령이니까 따르기엔 나도 엄연히 회사 구성원인데. 나만 콕 찝어 몸담는 곳이 바뀌었는데, 미리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차라리 나와 선배 둘이서 가위바위보라도 시켜서 진 거라면 납득이라도 하겠다.
다른 구성원에 비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서 보낸 시간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직은 수직적 문화가 남은 언론사에서 다소 곤란한 일은 저연차 막내의 몫이었고,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모두 따랐다. 까라면 깠고, 대신 손에 피를 묻히라면 흥건히 묻혔고, 대신 사과하라면 무릎을 꿇었다.
심지어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도 네 달을 고스란히 일했다.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라는 문화 때문. 근데 돌아온 건...남들은 (부서가 그대로이니) 전문성을 더 쌓아갈 때, 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짧으면서도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고과 산정 때 과연 참작해줄까? 지금 상황만 봐도 난 답을 알겠는데.
암튼 그래서 내가 저분께 감히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전봇대에 사진 찍는다는 처지로 몇 주를 보냈다. 맘 같아선 머리에 빨간 띠라도 두르고 싶지만, 또 쫄보라 용기도 못 냈다. 정말 나갈 때 나가더라도 회사 있는 한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 하는 법. 무엇보다 내가 새로운 영역 공부할 시간 필요하다고 머뭇거리면, 그날 신문 백지로 나가게 생긴다. 결국 연락처 리스트를 받고 여기저기 보도자료라도 보내달라고 전화를 돌렸다.
"살려주세요". 이달 내내 "도와주세요" 다음으로 많이 꺼낸 말이다. 특히 다른 부서에 있느라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던 분들에게 다시 연락을 돌리면서 일단 살려달라는 말부터 하고 있다. 당장 필요한 일 없으니 2년 동안 연락 한 번 안 하다가, 갑자기 친한 척하면서 기삿거리 좀 달라고 부탁하기. 나도 고개를 못 들겠다. 상대는 그 의도를 모를까.
덕분에 야쿠르트 판촉 돌던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땐 모르는 사람들한테 한 번 쪽팔리고 말면 됐지. 역시나 과거는 미화된다. 암튼 회사의 한순간의 명령에 나는 자존감이 한없이 무너졌고, 30대 중반을 맞아 진짜 멋있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는 저 멀리 물 건너 가버렸다.
하도 일하기 싫고 자신 없는 기색을 보이니, 선배들은 선배들대로 어르고 달래느라 고생이다. 어떻게든 업계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만나게 해주려고 점심 약속 데리고 나가고, 최근 이런 이슈가 있으니 취재 한 번 해보라고 알려주신다. 선배들도 다 매일매일 기사가 고민일 텐데. 말 그대로 골칫덩이 신세가 됐다. 내가 빠져주는 게 도움이 되는 걸까. 카톡 문장 끝마다 "ㅜㅜ" 붙이는 게 일상이 됐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포지션은 '전문가를 만나는 비전문가'였다. 기자 명함을 들고 있으면 은근히 수요가 큰 포지션이다. 실제로 벤처/스타트업을 담당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자기 일에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냥 25일만 기다리는 월급쟁이가 아니라 자신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애를 쓰고, 그 에너지가 타인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그런 사람들. 심지어 그런 열정으로 움직이는 공무원들은 나오는 사업 퍼포먼스도 달랐다.
나도 그 에너지를 받고자 부단히 움직였고, 그래도 정부 정책이나 업계 동향에 대해 한 마디 훈수 정도는 줄 깜냥은 된다고 감히 판단했다. 그와 관련한 글을 올해는 좀 쓸 생각이었다. 신세한탄 말고. 하지만 모두 무너져버렸다...ㅎㅎㅎ
“새해엔 마흔하나입니다. 한강 작가의 말을 빌리면 ‘내가 어디쯤 왔지, 그리고 어디까지 가야 하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현직 기자로서는 대략 15년 남짓한 시간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보고 싶고, 취재 또는 인터뷰하고 싶은 분들을 저만의 언어로 기사화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은 거죠. 어떤 의미에선 촉박하다는 마음, 심지어 조급함까지 듭니다. 그래서 주어진 지금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몇 겹의 우연에 간절함 더해져… 운명처럼 다가온 '한강 인터뷰'-(https://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57550)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날 인터뷰 단독을 낸 선배도, 기자로서의 삶에 촉박함을 느낀다. 생각보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도 않는다. 거기에 비할 데도 못 되는 커리어. 그럼에도 나 역시 주어진 지금 시간을 낭비하기 싫고, 조급함을 안고 산다.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원치 않게 허비해야 하는 지금이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