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송사리 기자님, 내년에는 양띠가 삼재래요. 조심하셔야 해요."
지난해 말, 복수의 업자가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주역을 직접 공부하는 이도, 사주어플을 애용하는 분도 가리키는 방향은 똑같았다. 내년(그러니까 올해) 나는 다소 불운한 한 해를 보내게 된다는 것. 그래도 복삼재라고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듣는 나는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사람 좋은 표정을 또 지었지만, 속으로 외쳤다.
퉤! 퉤! 퉤!
아직 2025년이 시작도 안 했는데 불운할 거란 소리 들으면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딨나. 심지어 당시 나는 암 수술을 받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병자가 된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내년에는 더 안 좋아질 거라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애써 잊고 살았는데, 2025년이 되자마자 비보가 찾아왔다. 바로 인사이동. 지금도 아직도 출입처 변경에 낙담하고 우울한 데, 1월 첫 주 갑작스런 인사 명령은 악재 그 자체였다. 가끔 운동선수가 소속팀과 갈등이 생기면 '언해피'를 띄운다고 하지 않나.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1월 3일 금요일 저녁에 통지 받자 나는 개성 넘치던 카톡 프사를 다 내리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생각났다. 아 내가 진짜로 삼재긴 한가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불행한 일이 몇 번은 더 찾아올 텐데,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정말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2주를 보냈다.
정확히는 1월 셋째 주 목요일. 진짜 오랜만에 동기와 저녁을 가졌다. 안주는 뻔 하다시피 회사 이야기. 나는 납득하지 못할 현재 내 상황에 대해 울분을 토했고, 열을 식히기 위해 잔을 입술로 연거푸 가져갔다. 그래야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까.
자리는 8시쯤 파했다. 보통이면 2차로 옮기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우리는 미련 없이 지하철역을 향했다. 내일 쓸 것을 찾지 못했거든. 지금이라도 집에 들어가야 정신을 차리고, 뭐라도 찾을까 말까 한 상태였다. 그나마 술을 빨리 깨고 싶어, 지하철 한 정거장 되는 거리를 나는 무작정 걸었다. 한겨울임에도.
추위를 피하고자 두 손을 상의 주머니에 넣은 나는, 드디어 논현역에 도착. 계단을 내려가는 데 전광판에 알림이 떴다. 장암행 7호선 열차가 현재 논현역에 접근 중이라고. 그리고 다음 열차는 7분을 기다려야 온다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내 선택은 하나. 어떻게든 플랫폼에 들어오는 열차를 타는 것. 집에 들어가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내겐 7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너무 빨리 내려가다 보니 내가 내 몸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것. 내려가는 내 다리보다 상체가 더 앞으로 쏠리고 말았다. 나의 내려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거기에 춥다고 양손은 주머니에 있으니 답이 없었다. 거의 구르기 직전에 깨달았다. 좆됐다는 것을.
최대한 몸을 옆으로 돌려봤지만, 결국 이마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너무 아팠고, 설마 설마 하면서 나는 제발 통증으로만 끝나길 바랐다. 그러나, 바닥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 탄식을 뱉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어찌 119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이윽고 부장께 통화해 내가 지금 사고를 쳤다고 자수했다. 그 과정에서 핸드폰에 피가 묻어 버튼이 지 맘대로 눌러지고, 경황이 없어 최근 통화목록에 있는 사람들한테 한 번씩 전화가 간 것은 안 비밀ㅎ.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로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순간 속상함이 몰려왔다. 나는 삼재가 맞구나. 아직 1월 중순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두 번이나 불운한 일을 겪다니. 앞으로 스무 번 더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다니. 두렵고 무서워서 삼재라고 일러주신 분께 전화를 걸어 통곡했다. 시간은 아홉시 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내가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닫고 카톡으로 사과를 드렸다.
응? 삼재가 입춘부터라고? 그제야 빠른 년생들이 입춘을 기준으로 띠가 나뉘는 게 떠올랐다. 그러니까 아직 삼재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이 일들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지? 혹 떼려다가 근심 걱정을 가득 안고 말았다...
달력을 보니 어느덧 5월 중순. 네 달 사이 악재라고 할 일은 크게 겪지 않았다. 살이 찐 것 빼고는 몸은 그럭저럭 멀쩡하고, 입춘 전보다 우울하진 않다.
하지만 올해도 벌써 반환점을 향해 가는데, 뭘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게 없다는 것. 그게 을사년 가장 슬픈 일이다. 나름 전문성을 쌓던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던져졌고,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니까, 이 황무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것밖에 올해 한 게 없다. 새로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매일 홈페이지를 뒤졌고, 명함 하나라도 돌릴 수 있는 행사라면 한 시간 거리를 다녀오는 걸 꺼리지 않았다. 대충 하라면 할 수 있는데, 그럼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사실 머리 깨진 다음 날, 아침에 이마를 봉합하고 곧바로 점심 미팅을 찾아갔다. 부장과 선배는 치료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몸이 저절로 지하철로 향했다.(심지어 사고 친 논현역에서 환승했다..) 사람 만나는 게 급한데, 사고 났다고 미루면 한 달은 지나야 다시 잡힐 게 분명하다. 그때의 자신 없는 내 모습이 싫어서, 머리에 피도 못 닦아낸 채 처음 뵙는 과장님께 명함을 건넸고,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내일은 조출이다. 새벽 네시 반부터 3분 단위로 알람을 맞췄다. 갑작스레 넘어온 취재 일정이라 안 가도 했지만, 보아하니 회사에 필요한 일이고 몸으로 떼우는 게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자청했다. 명함 돌릴 만한 분들도 꽤 오고.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수술한지 아직 1년도 안 됐다), 마음은 지쳐가니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드는 밤이다. 이미 벌어진 일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내가 못나게 변하고 올해 한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야 말로 진짜 악재 중에 악재가 아닌가. 무엇보다 내가 행복해야 모든 게 의미 있단 말이지.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고민 속에 잠 못 들어 또 끼적인다. 다섯 시간 뒤면 일어나서 출근 준비해야 하는데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