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8-홀애비

외로워.

by 송사리

"제가 봤을 때 기자님은 연애를 해야 돼요"


사흘 전 점심, 맞은편에 앉은 스타트업 이사께서 말을 건넸다. 뜨끔. 혹시 홀애비 냄새가 거기까지 흘러갔나 싶어 내 몸에 괜히 코를 킁킁 거렸다.


40대 후반이면서 세 아이의 아빠인 그는 꽃다운 나이에 일만 하는 자신의 회사 사람들이 안타깝다며 말을 이어갔다. 자신은 아무리 일이 많지만 체력도 한계가 있고 가정도 있다 보니 10시쯤이면 '셔터'를 내리는데, 아직 미혼인 대표는 새벽까지도 일을 놓지를 않는단다. 여기에 엔지니어들도 일에만 몰두하는 게 임원으로서는 반가울 일이지만 인생 선배로서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역시 일 얘기 빼고는 대화를 이어가질 못하는 내 모습에서 왠지 모를 딱함을 느꼈나 보다.


이사님의 말에 '뼈 맞은 듯' 아팠던 것은 바로 전날을 허투루 보냈기 때문.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 본다고 하루 늦게 잤더니 내내 피곤해 집에 일찍 들어온 날이었다. 퇴근하자마자 한숨 자려고 했는데, 갑자기 카톡이 울리고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실패. 다 마치니 여섯시 반쯤 됐는데, 다시 자기는 그른 상황. 무엇을 해야 알차게 보낼까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마트로 가서 술을 고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후회했지.


일찍 퇴근한 날 공허함을 못 이기고 혼술을 택하는 날이 요즘 부쩍 늘었다. 알다시피 암 수술 받고 돌아온 지 1년도 안 된 몸이다. 그 누구보다 몸을 관리해야 할 때 자꾸 술을 찾는 것은 당연히 심각한 문제. 전만 해도 혼자서는 술을 먹지 말자고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이제는 그 다짐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왜냐면 할 게 없거든.


자취방에 홀로 배달음식 하나 시키고 예능 프로그램 틀고 술 한 잔 때리는 모습은 내가 봐도 처량하다. 홀애비가 아니라 이렇게 영영 독거노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지경이다. 가끔 TV를 보면 토요일 아침에 휴먼 다큐 프로그램 나오지 않나. 언젠가 노모 모시고 사는 송사리 할아버지로 '테레비'에 소개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발버둥은 쳤다. 특히나 연애. 2년 전 장기연애 종료 후 홀애비 티 팍팍 풍기면서 다니는 게 불쌍했는지 주변에서 소개팅을 시켜줬다. 어떻게 명색이 기자인데 인터뷰 제안보다 소개팅 제의가 더 많이 들어왔다.


잘 됐으면 내가 이런 글을 싸지르고 있진 않겠지ㅎ 30대 중반의 연애는 더더욱 쉽지 않음을 느낀다. 나 같은 사람이 내 앞에 있기 때문. 연애도 결국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 마음이 생기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노력할 여유가 없고, 상대가 다가와주길 서로 바란다. 대화는 당연히 겉돈다. MBTI, 취미, 주말에 뭐 하는지, 형제관계 그리고 서로의 직장은 어떤지. 평소 점심미팅이랑 다를 바가 없다.

그림13.png SBS <짝> 10기 남자 6호 수의사형 진짜 죄송해요. 이제 이 짤 더는 안 쓸게요...ㅜ


그렇게 자존감만 떨어지고 돌아온 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상대가 "주말에 보통 뭐 하냐"고 묻는데 누워서 유튜브 쇼츠 보고, 남의 인스타 스토리 염탐하고, 각종 커뮤니티 눈팅한다고 할 수 없진 않는가. 내 딴에는 영화를 본다고 둘러대는데, 요즘 영화 안 보는 거 곧장 탄로 난다. 그렇게 접점을 찾는데 실패하고 대화는 다시 겉돈다.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아직 연애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자위한다. 그래서 더 비참하다. 연애를 안 하는 대신에 뭔가 자랑할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그랬으면 자취방에 빈병이 굴러다니진 않았겠지. 그렇다고 일을 무지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일을 오밤중에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애매한 나날만 반복된다. 그렇게 독거중년이 되고 있다.

화면 캡처 2025-06-08 233848.png 치즈 <어떻게 생각해> 뮤비 캡처.


재밌게 살고 싶다. 누구나 자신만의 판타지가 있지 않은가. 알콩달콩 연애하며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고 싶은데, 현실은 휴먼다큐의 측은한 '대상' 그 자체. 이러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닌데 말이다. 어린이대공원 산책을 자주 하는데 다들 가족 단위 나들이객 아니면 연인이다. 혼자 어둠을 발산하며 사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진짜 재밌게 살고 싶다.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공허함 없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 이 회사 처음 왔을 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취미를 가질 것을 조언해줬다. 하지만 바쁘단 핑계로, 여유가 없단 변명으로, 돈이 없다는 앓는 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니 홀애비로 남고 말지. 이번 연휴도 그렇게 무지 재미없게 보내고 말았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또 느끼는 요즘. 진짜 미국 출장 때문에 이번 주는 어쩔 수 없고, 다녀오는 다다음주에는 기어코 재밌게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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