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섭
"또한 연령대별 부자 되는 법도 다릅니다. 30대에는 좋아하는 일에서 1%가 되고, 중소형 기술주에 투자해야 합니다. 연금보험 같은 안정적인 투자는 물가상승률 대비 자산을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노후 1억 있다면 이렇게... 한 달 100만원씩 들어 옵니다> 조선일보, 2025년 10월 7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933281?sid=101
이제는 까마득해진 추석연휴에 읽은 기사다. 제목 보고 100만원 벌 줄 알고 잽싸게 클릭했는데,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고 말았다. 30대에겐 재테크만큼이나 내 몸값 올리는 것이 중요한 시기 아닌가. 1%. 어떤 분야든 1%가 되면 그땐 세상이 알아서 나를 찾는다. 돈도 알아서 따라오겠지.
좋아하는 일에서 1%. 나는 뭘 좋아할까. 바로 답이 나왔다. 술, 여자, 돈. 하지만 이들이 나를 좋아해준 적은 없다. 당연히 1%가 된 적도 없고.
예를 들어 술에 진심인 사람들은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음식에 적합한 와인리스트를 줄줄 꿰고 다니고, 위스키바를 찾아 낭만을 즐기지 않나. 30대가 꺾인 나는 아직도 필라이트 마신다. 카스랑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어서. 걍 싼 게 비지떡이구나 하고 취업준비생 시절 입맛을 이어간다. 이런 경우는 술에서 1%가 아니라 '술또라이'라고 칭하지 않나.
취향의 모호함에 대해선 참 길게도 고민해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뮤지컬에 꽂혀 거금을 들이면서 블루스퀘어 공연을 찾는다던가, 클라이밍·러닝·자전거 등 매주 운동을 즐긴다던가, 전자기기를 너무 좋아해서 신제품이 출시되면 곧장 구매하고 평을 남긴다던가. 황금 같은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 빠져들 이유를 찾았고, 그게 하루하루 힘차게 살아갈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닌가.
그걸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구경만 하고 있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싫어하는 것도 없는 삶만 30년째. 그나마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구기 종목을 좋아했는데 TV로 본다. 다들 경기장까지 가서 응원하고 굿즈도 사는데 이들 앞에서 내가 어찌 자랑을 할 수 있을까. 영화도 코미디랑 멜로 분야만 가려서 보고, 요리는 라면이랑 볶음밥만 할 줄 알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다.
부자가 되기 이전에 남자로서 매력이 전혀 안 느껴지니 문제다. 가령 소개팅을 나가면 취미가 뭐냐, 주말에 뭐하냐는 이야기는 주고받지 않나. 딱히 자랑할 게 없어 매번 머리만 긁적인다.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되니 어디 애프터 신청을 할 수가 없다. "송사리님은 되게 정적이신가 보네요"란 이야기만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 아닌데ㅜ
그리고 피폐해졌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주말 이틀.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으니 맨날 늦잠자고, 누워서 핸드폰만 몇시간 하고, 밥 먹고, 혈당 올라와서 다시 눕고, 핸드폰하다가 잠들고. 이렇게 주말을 보낸 게 몇년 째인지 모르겠다. 취준생 이후로 뭘 하고 싶다 또는 해야겠다는 목표가 없으니 그냥 시간을 날려먹고 있는 셈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차게 보내는데 나는 대체 뭐하는 놈일까. 자책하다 보니 자신감을 잃고, 위축돼 다시 집에만 머무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홍만섭이 부러운 요즘이다. 백팩에 우산과 물병을 각각 꽂아놓고, 누가 봐도 복학생 외양의 만섭. 취업난으로 삭막해진 캠퍼스에 족구장을 만들어 달라고 목소리를 낸다. 말 그대로 '족구 하는 소리'. 하지만 만섭은 족구에 대한 진심과 실력으로 캠퍼스의 대학생을 매료시킨다. 이어 열리는 캠퍼스 족구대회는 만섭의 무대가 된다.
"쫌 쪽팔리면 어떠냐. 만섭이를 봐. 만섭이가 아무리 병신 같아도 자기하고 싶은 건 다하면서 살잖아!"
그런 만섭은 첫눈에 반한 캠퍼스 퀸카 안나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용기도 지녔다. 그 매력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과는 다르다는 게 함정이지만. 암튼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는 주관에서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충분히 멋있지 않나. 안나도 잠시 흔들리고 만다.
영화를 접한 당시 나도 복학생이었기에, 만섭은 자연스레 나의 영웅이 되었다. 아싸인 나도 만섭처럼 사랑과 인기를 동시에 잡으리라고 다짐했었다. 허나 10년 넘게 지나도록 그대로다. 취업난에 누구보다 허덕이면서 낭만을 잃어갔고, 취미가 뭐냐는 말에 어버버하는 아저씨 바보가 되어있다. 용기 못 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더는 이대로 도태될 수 없어 또 끼적인다. 언제까지 주말을 허비하면서 나이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 당장 1%까진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분야를 빨리 찾아야겠다. 방법은 별 것 없다. 뭐라도 해봐야지. 그러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달라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