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간장 두 종지(이제 이거 아는 사람도 별로 없겠구나ㅜ)'로 화제가 된 유력 일간지 부장의 칼럼. 10년이 지났는데도 가히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라는 그 복잡 미묘한 단어에 대해서 이렇게 공감가게 쓴 글이 있을까.
난닝구 차림으로 밖에 나가 눈이든 풀이든 흙이든 막 먹어버리고 싶은 요즘이다. 일이 하기 싫다고, 사는 게 재미없다고 매일 찡찡거리지만, 30대 중반 아저씨에게도 마음에 스파크가 튀는 일이 종종 생긴다. 딱 스파크까지만.
사랑이 불타오르지 못한 이유는 극단적이다. 어떨 땐 속도를 지나치게 내서 그르쳤고, 또 어떨 때는 지나치게 돌다리를 두드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용기조차 못낸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그저 주고받은 카톡이나 틈만 나면 다시 살펴볼 뿐.
핑계는 있다. 힘들 게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형 왜 그래?"라는 말이 돌아올까 봐. 오빠도 아니고 형. 이성으로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 아닌가. 혹시 나도 이 당황스러움을 마주할까봐 두려워, 얼굴에 티가 다 나면서도 "나, 너 좋아한다" 이 여섯 글자를 차마 꺼내지를 못한다. 아이고 한심해. 이 정도로 자존감이 무너졌다.
답답해서 거울을 봤다. 최근 화제가 됐던 '영포티짤'이 비쳤다. 내 나이도 어느덧 반올림하면 마흔. 영포티구나. 저 분이 나보다 더 나아 보인다. 나는 키도 작은데 배는 나왔고, 스스로 꾸밀 줄도 모른다. 인성은 밑바닥이고. 장가가기 글렀구나. 엄마 미안..
사실 외적인 부분도 부분이지만, 30대 중반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것들을 가지지 못한 점이 눈에 밟힌다. 아무래도 취업이 늦어 돈을 얼마 모으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일찍 대기업에 취업한 몇몇 친구는 (아무리 대출을 꼈다지만) 아파트를 자가로 가졌고, 번듯하게 가정을 꾸려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
나는 그걸 7평짜리 자취방에 누워 인스타그램으로 구경이나 하고 있다. 그 자취를 위해 나가는 월세 때문에 매달 저축은 쥐꼬리만큼만. 심지어 차도 없다. 그래도 30대 중반인데 만약에 데이트를 할라 치면, 차를 끌고 서울 밖으로 함 나가봐야 하지 않나. 차가 없다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신 빨간버스 타고 가자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여기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고, 사랑하는 엄마는 병원 신세다. 신랑감으로는 빵점이다.
아무래도 결혼정보회사에서도 나를 안 받아줄 것 같다. 글 쓰다가 자존감만 더더 떨어졌다.
그럼에도 연애가 하고 싶다. 올해 잠깐씩 스파크가 튀면서 가장 기분이 묘했던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단벌 신사가 쇼핑몰에 들어가 옷과 신발을 고르고, 머리를 가담으면서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에너지가 괜히 기분 좋았다. 이런 에너지가 표정과 행태에서 드러나고, 다시 사랑받으면서 남자다움으로 이어지는 거겠지? 사랑을 글로 배워서 도저히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나도 사람이다 보니, 길가다가 행인들을 마주치면 "내가 저 사람보단 나은 것 같은데?"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근데 그 사람도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다. 나는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있는 걸까. 일단 자존감 부분에선 낙제점이 분명하다.
갑자기 날이 쌀쌀해지면서 오늘 아침 긴팔 옷들을 꺼냈는데, 한숨이 나왔다. 매일 백팩을 매고 다니다보니 어깨 부분은 헤져있었고, 카라 부분은 누리끼리해진 옷들이 태반이었다. 지난봄까지도 이렇게 홀애비 행색을 하고 다녔다고? 이러니 사람들이 날 피하지ㅜ 이번 주말은 당장 옷부터 사야겠다.
연애가 하고 싶다. 너무나 연애가 하고 싶다. 오랜만에 꺼내 읽은 글의 마지막 글귀를 다시 살펴보면서 이런 류의 찡찡거리는 글은 다시는 쓰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사랑하기 좋을 때다. 특히 연인이 없어 늘 미열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체온이 0.5도씩 상승하는 때다. 집구석에 있지 말고 나가라. 나가서 연애를 하라. 연애 못하겠으면 그냥 헤매라. 헤매다가 운이 좋으면 내리는 눈이라도 한껏 삼키라. 그게 멸치 안주에 소주 마시면서 징징거리는 것보다 오 만배 낫다."
제발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