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2-가불기

자신이 없어 쓰는 글

by 송사리

막연하게 수술 날만 기다리던 작년 5월 말의 일이다.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저녁이 되어 부랴 다음 날 발제거리를 찾고 있는데, 회사를 떠난 나의 첫 사수 선배(앞선 나의 글에서 등장한 적이 있다)한테 전화가 왔다. 다른 선배의 조문을 갔다가, 회사 사람들로부터 내가 아프단 이야기를 들었다며 연락을 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수화기 너머의 선배가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 그럼 일 대충해도 되겠네?"


진짜 너무 억울했다. 갑상선암에 걸린 상태로 세 달을 일했는데 듣는 얘기가 이딴 소리라니. 당연히 아픈 것을 핑계 삼아 대충할 생각도 없었고, 진짜 친한 취재원들 빼고는 병가 들어가기 직전까지 아픈 사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가판이 나오는 오후 4시만 넘으면 출입처 대변인실에서 자꾸 전화가 와서 힘들던 시기였다. 송사리 기자님 이렇게 기사 쓰시면 우리 곤란하다, 우리 입장 좀 반영해 달라 이런 읍소들. 내 기사에 "긁혔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정도로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상갓집에서 내 이야기가 안주로 오갔을 것이란 심증이 들었다. 회사가 원하는 '쎈 기사'를 못 쓴 게 죄겠지. 물론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당시 담당하던 중소기업, 벤처/스타트업 관련 기사로 대기업보다 주목을 받기는 당연히 힘들다. 말진이라 좋은 아이템을 내가 쥘 수 없는 '짬'의 문제도 있었다. 이걸 알아주기는 커녕, 사람들은 내 약점을 후벼 파는구나. 섬뜩했다.


오기가 생겨서 그 주에 신문 1~2면에 들어가는 주요 기사를 뜻하는 '종합'을 세 개 썼다. 돌아온 반응은 안 봐도 뻔하다.


"뭐야, 할 수 있으면서 그동안 안 한 거였어?"


가불기(가드 불가능 기술)가 걸렸다. 세상은 냉정한 곳이었다.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을 부서에 전하면서 저 날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내 딴에는 당연히 아들 노릇이 우선순위인데, 이로 인해 회사 생활에서 뒷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미 저조한 성과로 인해 눈칫밥을 받고 있는지 몇 개월(물론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로 촉발된 것이기에 할 말은 있다). 여기에 보호자로 병원을 가느라 연차라도 내면,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고생을 하게 된다. 처음이야 이 쉽지 않은 상황을 이해받지만, 이마저도 누적되면 서로 곤란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름대로 더 격하게 발버둥을 쳤다. 인터뷰 잡아보겠다고 콜드메일을 마구 뿌렸고, 높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행사라면 발걸음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에만 교통카드비로 15만원 가까이 나왔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의욕만 앞서면 무리수를 저지르게 된다. 결국 지난달 사고를 치고 말았다. 정부 사업 중 하나가 지출 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년 예산이 크게 삭감됐다고 기사를 냈는데, 뒤늦게 기사를 확인한 공무원들이 저녁에 부랴 전화를 걸었다. 예산이 오히려 늘었다고, 기자님 이거 완전 오보라고.


담당자들이 내가 틀렸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나. 심지어 퇴근해야 할 시간에 내 기사 대응하느라 강제 야근이 확정됐다. 여러 차례 걸려오는 전화에 그냥 무조건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렸다.


과장님께서 다소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차라리 저희한테 물어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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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잘 안 받아주시는 건 차지하고, 그걸 어떻게 직접 물어보나. 나는 당신을 "까겠다고" 미리 예고를 하는 건데. 돈가방을 차지하려는 노홍철도, 박명수도 서로 직접 이야기 꺼내진 않는다. 그저 눈치를 살피다가 기회를 엿볼 뿐. 물론 어떤 기사든 당사자 입장을 듣는 게 맞다. 성격 탓인가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물어보더라도 다른 이야기하다가 슬쩍 원하는 답을 얻어내는 얌챙이짓만 반복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예산은 일부 삭감된 게 맞았다. 출입처는 설명자료를 내 삭감 이유를 밝혀 사업의 원활한 추진 의지를 밝혔고, 나는 오보는 피하게 된 서로 다행인 상황으로 귀결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날 이후로 일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연히 일을 잘하고 싶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기사를 쓰고 싶다. 근데 간만에 의욕적으로 쓴 기사로 인해 여러 명이 고생한 것을 눈으로 보고 말았다. 당분간 정부 건드리는 기사는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그럼 뭘 써야 하지? 안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쎈 기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무리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무사하게 접근하면 내가 피해를 본다. 매일매일이 가불기에 걸려버린 삶이구나.


요 근래 안타까운 기사를 접하면서, 언론의 역할은 뭘까란 생각을 한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만 해도 온 언론사에서 취재 경쟁이 붙고 '예고된 인재'였음을 지적하고 나선다. 그 무게는 담당자가 홀로 짊어져야 하고. 무슨 죄가 있을까 싶다. 물론 언론도 죄가 없다. 전 국민이 불편을 겪은 일에 대해 세밀하게 담아서 국민에게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데,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곤 한다.


개인사로도 일로도 뭔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한없이 작아진 요즘. 나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그래서 내일 뭐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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