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욕심 좀 내
"실속 없이 비효율적으로 사는 걸로는 1% 안에 들긴 하겠구나."
지난주 목요일, 21시 51분 출발(심지어 8분 연착...) 수서행 SRT를 기다리는 대전역 플랫폼에서 그런 생각을 좀 했다. 대전에 도착한 게 17시 56분. 네 시간 남짓 머무르기 위해 대전을 오간 이유는 '도룡벤처포럼'이라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함. 매 달마다 대전 지역 창업가와 투자자, 스타트업 관계자가 모여 교류하는 자리다. 알다시피 나는 대전 사람도 아니고, 창업가나 투자자는 더더욱 아니다. 어느 누구도 나보고 참석하라고 안했다.
한가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전 11시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 듣고, 시청에서 점심 미팅 갖고(브리핑 길어져서 7분 늦어서 또 싹싹 빌고..), 강남 넘어와서 콘퍼런스 참석자들한테 명함 돌리고, 수서에서 기차 타고. 무려 네 번째 일정이다. 집 도착하면 12시라 바로 씻고 누워야 한다.
거기에 오가는 기차 삯과 집 가는 택시비 생각하면, 나는 하루 일당을 교통비로 날려버린 셈이다. 돈 없어서 성심당 빵도 못 사먹는다. 어느 누구도 오라고 한 적 없는 행사에, 왜 나는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 극성인 걸까.
사람 때문이다. 예전 출입처 부회장님과 인연이 시작이었다. 부회장님과 서로의 필요 때문에 자주 왕래하던 일이 있었는데, 대전 창업 생태계를 위해 오래 힘썼다면서 벤처포럼 이야기를 꺼내셨다. 술김에 나도 지역 생태계에 관심이 있다면서, 언제 꼭 대전을 가겠다고 커진 목소리로 약속했다.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처음 포럼을 찾았고, 분기에 한번쯤은 부회장님 얼굴을 봐야겠다 싶어 무리하게 당일치기를 한다.
가면 한 다섯 명 정도 반겨주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공무원들이다. 기사 쓰는 데 도움주시기 보다는, 내가 기사 쓰려고 하면 어떻게든 말리시던 분들이다. 그래도 이제 출입처를 떠나니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티격태격하던 지난날을 농담처럼 나눈다. 뭐라도 챙겨주려고 하는 과장님, 사무관님들 미소가 감사해 오가는데 쓴 돈은 절대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물론 이번 달도 적자가 확정된 지금은 살짝 후회하고 있긴 하지만...ㅎ
올해 내내 이런 식이었다. 국회 입법토론회, 정부 정책 공청회, 제약사 신제품 설명회, 투자사 IR 데이 등 일정이 되면 잠깐이라도 들려서 명함을 돌리고 다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남으려고. 취재원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우선 명함부터 쥐어주고 "저번에 00 행사에서 인사드렸던 송사리입니다"라고 하면, 상대는 "아~"라며 관심을 조금이라도 기울여준다. 하도 돌아다니니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기억해주시기 시작했다. 기사거리는 안 주지만.
나를 보는 몇몇 선배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비효율적이었기 때문. 매일매일 기사거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찾아다닐 여유가 어디 있나. 때로는 홈페이지를 뒤지거나 전화를 걸어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다.
나 역시도 속상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고생한 과실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갈 때다. 1년 차 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개척한 분야가 있었는데, 그 분야가 세간의 관심에 올라있을 때 나는 다른 부서로 옮겨져 있었다. 후임자께서 모두 자신이 해낸 것처럼 내부 보고를 남기는 걸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날 뻔 했다. 가끔은 내 영역이 아니어서 다른 동료한테 들은 정보를 알려줬는데, 바이라인에 내 이름이 없으면 눈물이 찔끔 난다. 어느 누구도 나의 기여도를 모를 테니까.
"나의 소중한 꽃들은 언제나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남에게 가버렸다."
애독자의 추천으로 지난 주말 극장을 찾게 된 영화 <첫잔처럼>. 시작하자마자 왜 내 이야기가 스크린에 나오지?란 생각부터 들었다. 안 그래도 조달환 닮았단 얘기 듣는데...
소심하고 내성적인 호연은 어려서부터 '남 좋은 일'을 베풀다시피 했다. 물론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자신만의 요리비법을 전해 분식집을 문전성시로 만들어줬지만 정작 본인은 문전박대를 당하고, 일찌감치 짝사랑했던 여성은 눈길 한번 주질 않는다.
30대 중반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되어서도 마찬가지. 마음에 든 사내 후배를 말 한번 못 걸어본 채 눈만 깜빡이고 있고, 성과를 낼 수 있는 포지션의 T.O가 났지만 차마 손을 들지 못한다. 나는 그럴 배포가 안 된다면서, 남들 보다 더디고 웅크리고 주저했다. 언젠가는 내 가치를 알아줄 거라며 천천히 움직이지만, 그럴수록 열매는 야망을 가진 자들의 것.
영화 <첫잔처럼>
"너도 욕심 좀 내"
보다 못한 나머지 주변에서 일깨운다. 지금 호연을 변화시킬 열쇠는 바로 용기라는 것을. 자신을 아낀 회사 전 대표로부터 '마법의 넥타이'를 선물받은면서 호연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다.
"주저하고 머뭇거렸던 지난 시간들, 이제 내 길을 가야겠다."
https://tv.naver.com/v/10330453
메인 예고편 영상으로 갈음!
완전 나한테 건네는 이야기 같아서 사흘 내내 여운에 젖어있다.
그리고 퇴근 직전 감사 카톡을 받으며 힘을 얻는다. 보도자료를 보낸 대표님께 콜드메일을 보내 성사된 인터뷰였는데, 교집합인 투자사에서 연락이 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발버둥이라고 칭하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기회이고, 내가 하는 활동 하나하나가 또 누군가는 관심을 갖는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무엇보다 여태까지 도와주려고 애써주신 분들을 절대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
"난 이호연의 진심, 온기 그게 보이는데?"
이 대사가 귀에 맴돈다. 그렇게 내일 또 무작정 귀인을 만나러 돌아다닐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내일은 오전 7시 30분 조찬모임이니 일찍 자야지. 마음 급해서 또 횡설수설 끼적였구나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