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20대의 나를 지독하게 괴롭힌 것은 돈이었다. 스무살때 아빠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면서부터 생계는 우리 가족 모두의 숙제가 됐다. 누나는 누나대로, 나는 나대로 먹고 살 길을 찾으면서 청춘을 보냈다. 학교를 다니면서 과외 네 탕을 뛰는 건 용돈벌이가 아니라 몸부림이었다. 군대를 다녀오니 친척들은 "빨리 취업해서 홀어머니 고생 그만 시켜야지 않니?"라는 시선을 보냈다.
수긍하고 살려다가 그래도 해보고 싶은 것 해보자고 들어선 언론고시판. 난 청춘을 알차게 보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다들 방송국 인턴, 워킹홀리데이, 영상 프로젝트, 대기업 사회공헌 대외활동 등을 주요 이력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나는 이력서 칸 다 채우지도 못했는데. 엉덩이가 무거워 필기 합격 후 면접장까지는 자주 갔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봐도 공모전 수상 경력을 내세운 내 옆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매력 없는 나는 매번 쓴맛을 봐야했고, 어느덧 시계를 보니 내 나이는 서른을 넘어있었다. 교환학생, 유럽 여행 이런 건 해보지도 못한 채.
그래서 고백을 못했다. 나름 처절하게 살았는데 두 손에 아무것도 안 남은 내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어서. 30대가 넘어서니 사람들과 입사년도, 모은 돈, 취미 등으로 나를 알리고 남을 평가하고 있었다. 나름 서울 7평짜리 1.5룸 빌라에서 두 다리 뻗고 자기 위해 나름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다. 사회생활 경력은 짧았고, 모은 돈은 내놓기 부끄러운 수준이었고, 창피하게도 번번한 취미 하나 갖지 못했다. 상대는 유복하게 자랐고, 능력이 출중했고, 해외여행은 수도 없이 다녔더라. 교집합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를 이해가 되긴 할까?
그렇다고 살아온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수도 없다. 이 글이 브런치에 공개한 40번째 글인데, 아직도 나는 내 자신을 다 설명하지 못해 아쉬워 미치겠다. 이걸 다 설명하다가는 상대는 하품이 나오겠지. 모두가 용기를 내라고 등 떠밀다시피 했지만, 이런 황당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타당한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내 20대가 부끄러워서. 그걸 만회할 만큼 인물이 훤칠한 것도 아니고.
가슴앓이만 반복하던 어느 날 상대가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두 눈으로 똑똑히. 애초에 아무 사이가 아니었고, 내가 마음을 표한다하더라도 받아줘야 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이 상황은 진짜 존나 힘들었다. 일주일을 울먹이면서,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일만 하며 흘려보내고 말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wwIE15cBt38&list=RDwwIE15cBt38&start_radio=1
가슴에 상처가 아직 남은 지난 주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 유튜브만 계속 봤는데 위의 영상이 올라왔다. 색소폰 전주가 인상적인 샤크라의 <난 너에게>. 진짜 지금도 나의 '샤워송'일 정도로 애창곡이다. 그런데 처음 보는 분이 썸네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저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클릭해봤다.
샤크라 멤버였던 보나가 3분가량 되는 노래를 혼자 완창한다. 안무도 그대로 소화하면서 음정 흔들리지도 않고. 댓글에는 "저 노래가 혼자서 춤추며 완곡하는 게 가능한 거였어...." 같은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근데 나는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애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상을 보고 나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etTLxgAIww&list=RDcetTLxgAIww&start_radio=1
내가 아는 샤크라의 난 너에게는 저 네 명의 멤버가 파트를 나눠서 각자의 매력을 발휘해서 더 기억에 남는 곳이기 때문. 심지어 노래 잘 부르지도 못했다. 저 영상에서 랩을 맡은 이은은 본인도 민망해서 웃음을 짓고, 앨범에 수록된 버전은 음질이 굉장히 안 좋다. 하지만 정말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창 느낄 시기의 멤버들이, 2000년대에만 느낄 수 있는 무대에서 어우러졌기에 20년 넘게 지나도록 모두의 뇌리에 남아있다.
다시 <싱어게인4>로 돌아와서, 보나는 심사위원이 된 후배들 앞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하고 힘들어 보이는 데도 웃음을 짓는다. 다시 대중 앞에 설 기회를 얻기 위해서,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 것이다.
근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지만 치열하게 20대를 살았다고 합리화하는 내 모습이 자꾸 비쳐서 영상을 끝까지 보는 게 힘들었다. 샤크라도 샤크라 나름대로 빡센던 저 시기 가요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나. 하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20대의 싱그러움은 20대에 보내주고, 40대가 된 지금의 매력을 더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 영상은 20대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 조금 보였다.(반박시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당연히 나에게 하는 이야기다. 최근 여러 가지 일들로 내 20대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빠져있었고, 합리화하기 위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 과거를 팔아먹는 모습이 보였다. 모순되게도 그 20대에 사로잡혀 용기를 내야할 땐 내지도 못하고. 부족한 자산 형성과 사회생활을 극복할 30대 송사리의 매력을 발산해야 하지 않겠는가. 찾으면 나오긴 나올 거다... 나오겠지...??
글을 쓰다 보니 생각나는 장면 하나 더. 2014년 <무한도전>에서 방영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 깜짝 MC를 맡은 이본은 20년 전을 함께 한 동료들을 보자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눈물을 흘린다. 저땐 나도 20대였는데 괜시리 세월이 야속해 눈물을 두 방울 흘렸더랬지. 시간이 더 흐르면 나는 돈 앞에서 휘청였던 나의 20대를, 욕 안 처먹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나의 30대를 어떻게 기억할까.
우선 더 매력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홀애비 냄새 풀풀 나는 글 좀 그만 쓰고. 원래는 동기부여와 관련해 겪은 일화를 글로 쓰려했는데, 곧바로 의기소침해지는 일을 겪어 미루고 미루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내야 다시 채울 수 있어서 창피한 이야기를 또 끼적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난 너에게>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가사로 마무리해야지.
♬난 너에게 사랑을 원했어~ ♬
♬ 넌 언제나 대답이 없었지~ ♬
♬ 하지만 나 널 사랑해 언제까지나 ♬